단점 3. 공장은 작업환경과 공간에 투자를 최소화한 곳이다.
블라인드에서 대기업의 기준을 알려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15개쯤 되는 기준 중 일부는 화장실에서 음악이 나오고, 화장실이 내 방보다 깨끗하며, 내가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대생의 지방근무는 대부분 '공장'이다. 공장의 숙명은 원가절감이며, 회사는 지방사업장 환경과 공간에 투자를 덜 하곤 한다. 나는 대기업에 다닌다. 하지만 이곳에는 신식 기술을 갖춘 넓은 회의실도, 새하얀 인테리어타일에 노래가 나오는 깨끗한 화장실도 없다.
*블라인드: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직장을 인증하면 활동이 가능하다.
공장에는 4년제를 졸업한 엔지니어보다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오퍼레이터와 기술직, 그리고 하청 직원들의 비율이 더 높다. 기술직군은 어지간하면 정년을 채운다. 떵떵거릴 경력과 큰 목소리를 가진 나이 많은 사람들이 꽤 있다는 뜻이다. 엔지니어는 보통 직책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명예퇴직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후배들 아래에서 고개 숙이고 일하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고 그만두는 경우도 흔하다. 때마다 00부장에게 nn달치 월급을 제안했다더라 소문이 돈다.
기술직에게는 노조도 있다. 강경 노조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큰 목소리를 낸다. 이 목소리는 때로 모든 노동자에게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니즈는 대부분 청년세대와는 다르다.
단순히 밥만 봐도 그렇다. 요즘 소위 MZ세대는 건강과 운동에 관심이 많아 FRESH하고 깔끔한 음식에 선호가 높다. 반면, 대부분의 공장 인력들은 뜨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과 깍두기, 양파를 더 좋아한다. 그러니 엔지니어 비율이 높은 본사에서 식단으로 샐러드를 운영할 때, 공장에서는 아침마다 각종 탕류에 야채로 당근과 양파, 쌈장이 놓인다.
오래된 기계들 사이 현장 한가운데 기술직군을 위한 오래된 휴게공간은 있어도, 엔지니어를 위한 휴게실은 없다. 일단 내가 일하는 사업장 안에는 사내카페도, 사내운동시설도 없으며, 내가 갈 수 있는 휴게실도 한 달 전쯤 처음 생겼다.
물론 그만큼 승진의 여지도 높지만. 하지만 나는 가끔 의문이 든다. 고작 1년도 안되어부터 나에게 주어진 업무와 책임이 정말로, 내 연봉보다 높은 봉급을 받는 nn년차 기술직이 해낼 수 없는 것일까?
보통 엔지니어는 높은 분들과 기술직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진다. 얼마 전 우리 회사에서는 모두가 함께 받는 성과급을 쥐고 기술직군과 협상을 하기도 했었다. 그 협상의 성공을 위해 엔지니어인 여러 팀장들은 각 팀 내 기술직을 설득하라 지령을 받기도 한 듯 보였다.
깨끗한 시설, 리모델링한 휴게공간, 최신 기업문화 구축을 위한 각종 사내 제도들. 좋은 기업 이미지와 좋은 업무환경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본사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면, 공장은 하나의 원가절감된 부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면을 보여주려 만든 홍보 콘텐츠들이라지만, 매달 나오는 사보들을 볼 때면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
어차피 외부에 공장을 보여줄 일은 적다. 고위 간부는 대부분 본사에 있다. 애초에 임원의 비율도 본사가 훨씬 높다. 손님접대를 할 일도, 고객사에 보일 일도, 공장 안에서는 거의 없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일이 적다는 것이다. 혹시 생긴다면, 그 순간에만 잘 만회하면 된다. 거의 없는 일이니까.
보통 업무환경을 직업이나 회사 선택 기준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깨달았다. 나는 깨끗하고 좋은 환경을 중요하시하는 사람이었음을. 직장은 밥시간을 포함해 하루 최소 9-10시간 이상을 보내는 공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업무환경이 생각보다 삶의 만족도에 큰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다. 공장의 투자가 적은 업무환경, 이 부분이 내가 생각하는 세 번째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