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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Feb 26. 2020

마이너리그에서 살아남는 법

그다지 멋있지는 않더라도

내 삶을 조망해보자면

그야말로 마이너리그라고 이름붙일 수 있겠다.

굳이 살아가는 방식을 양분화하여 메이저와 마이너로 나눌 것까지는 없으나, 내가 메이저, 즉 주류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하다못해

배달마저도 오토바이나 전통킥보드 배달부가 아닌, 두 발로 죽자살자 페달을 밟아야 하는 자전거배달부이니 말이다.


요즘 우리 동네에 내 마음 속 동료들이 많이 보인다. 배민커넥트 배달부들이 늘어났다. 자전거보다는 전동 킥보드가 더 많은 것 같다. 여태껏 그들이 부럽지는 않았는데, 어제는 그들이 부러웠다. 내 배달 여정이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 지역에 1,000원이라는 큰 금액 할증이 붙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배민의 정책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저 배달요청이 들어오면 배달을 나갈 뿐이다. 할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배달 요청이 들어오는 족족 '이 건은 다른 라이더가 어쩌고 저쩌고'하는 메시지가 떴다.


왠지 모를 도전정신에, 그리고 천 원을 더 준다는 달콤한 할증에 홀랑 넘어갔다.


그리하여

우리 동네의 옆 동네까지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 토마토주스 두 개와 바나나주스 하나를 가방에 싣고. 머나먼 여정 중에 들어온 옆 동네의 배달 두 건을 동시에 받았다.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멀었다. 죽기살기로 페달을 밟았지만, 원래 낯선 동네는 이방인에게 관대하지 못한 편이다. 거기다 신도시의 특성상 그 건물이 그 건물 같고, 건물 이름이 눈에 띄지도 않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밤눈까지 어둡다. 보도블럭의 턱을 분간하지 못하여 자전거와 함께 고꾸라진 적도 있었다.


원래 픽업을 가기로 했던 만두 가게에 15분이나 늦었다. 배민커넥트 고객센터에서 업주가 컴플레인이 들어왔으니 빨리 가라는 메시지가 왔다. 만두 가게는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었는데 왜 못 찾았을까.


픽업이 15분이나 늦은 만두를 싣고 고객의 집으로 열심히 달렸다. 다행히 배달을 하면서 다리 힘이 좋아졌는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불평하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오토바이나 전동킥보드로 배달했다면 두 배, 세 배는 더 빨랐을 텐데. 낡은 싸구려 자전거가 꽤나 고생했다.


주류의 삶은 아마도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이 되겠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곧잘 하여 이름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1학년 때는 신입생의 기분을 만끽하며 조금 들떠보이긴 하나, 착실하게 전공과 어학을 공부한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에 가입하고 선배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준비해야 할 목록들을 착실히 체크. 2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과 공모전, 대외활동 등을 준비. 그리고 4학년 졸업 전에 취업에 성공. 몇 년간 돈을 모으고, 경제력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론.


여기서

몇 가지만 삐끗해볼까. 학창시절에 공부를 곧잘했지만 수능 실패. 대학 입학까지는 무난했으나 갑작스럽게 맞이한 정체성의 위기. 열심히 잘 살았는데 취업에 실패. 그럭저럭 무난하게 취업까지 성공했는데 결혼할 사람을 끝내 만나지 못하는 슬픔. 다시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오르려면 엄청난 감정소모를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게 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자책해야만 하는 비극이 너무나도 가까이 있다. 세상은 실수에 관대하지 못하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선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인생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다들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겠지.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가는 뒤쳐질 수밖에 없으니. 모두가 무빙워크에 올라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보통이 아닌 삶을 사는 것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괴롭기만 한가? 가끔은 구질구질하기도 하다. 월급이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지 않는 프리랜서는 매달이 걱정이다. 돈이 들어오지 않는 달에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나는 마이너리그에서 슈퍼루키도 아닌, 부진한데도 매일 뛰는 선수다. 내 또래들과 함께 무빙워크에 올라탔지만 잠시 한눈을 팔다가 그만 무빙워크에서 내려버려서 머나먼 길을 혼자 걸어가는 외톨이다.


누군가는 멋있다고 말하지만

나랑 바꿀래? 라고 하면 과연 그럴지는 의문이다. 마이너리그 역시 메이저리그만큼이나 치열하다. 오토바이 배달이 치열한 만큼 자전거 배달도 치열하다. 출근하지 않지만 퇴근도 없는 삶도 괴롭긴 매한가지다. 혼자 일하니 직장 내 인간관계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완전히 혼자가 되면 때로는 외롭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거다, 하는 마음을 먹어야 마이너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내 속도로 가겠다. 남들이 정해놓은 아스팔트길 말고, 비포장도로나 산길을 걸어서 가겠다, 하는 마음. 덧붙여 거지가 되어도 내가 선택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대책없는 낙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로를 쌩쌩 달리는 남들의 속도를 부러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마이너리그로 오라!

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어쨌든 온다면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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