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역 앞에서 스트립쇼는 하지 않았지만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동

by 김로진

한 동네에서 꾸준히 살아본 적이 없다. 살던 집을 재계약한 적도 없다.

나는 역마살이 낀 뜨내기고, 정처 없는 부랑자다.


출근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까닭에 이곳저곳에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본 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직장이었다면 출퇴근 거리를 고려하여 집을 구하고 가장 적합한 곳에 머물러 살았겠으나,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신도림동은 내가 서울에서 세 번째로 살았던 동네다.

중국인 마을이 있는 대림동, 이제는 이름이 바뀐 구로공단, 안양천을 너머 목동을 이웃으로 한다. 번쩍번쩍한 고층 아파트와 호텔 바로 옆에 문래동 철공소가 펼쳐지는 이상한 동네.

안양천 왼쪽으로 목동, 오른쪽 너머는 문래

신도림은 상징적이다. 세기말과 밀레니엄의 감성으로 성장기를 보낸 나는 자우림의 암울한 노래들을 mp3에 담아 듣곤했는데, "신도림 역앞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신도림이란 대관절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뉴스나 예능 등에서 '여의도 면적의 몇 배',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거리'를 말하는 건 수도권 외 지역,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에게는 뉴욕, 리우데자네이루의 상황을 얘기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지방에 살았던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서울 지명 중 하나였던 신도림.

신도림역은 어떤 곳이길래 그 앞에서 스트립쇼를 하나. 막연하게 신도림역이라는 미지의 공간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었다.


의문을 가슴에 품었던 내가 서울에 올라와 여러 동네를 거치면서 신도림은 나에게 꿈과 희망의 동네가 되었다. "꼭 신도림에서 살아야지!"하는 다짐으로.


이름도 어찌나 예쁜지, 기사님, 신도림이요, 할 때마다 신도림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도록 입에 꼭 머금고 있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강의를 다섯 개씩 나갔기에 나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최소 환승'이었다.

아마 나처럼 환승이 필요한 사람들이 신도림 근처에 모여 살았으리라.


신도림 역은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으로 어마어마한 유동인구를 자랑한다. 인천도 쉽게 갈 수 있고 천안, 수원도 쉽게 갈 수 있었다. 신촌, 홍대, 강남, 어디든 한번에 갈 수 있고, 버스환승으로 광명까지도 금방이다.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다.


게다가 디큐브시티 현대백화점과 쉐라톤호텔이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고, 테크노마트와도 연결되어 있다. 물론 휴대폰을 파는 9층 외에는 손님도 없지만.


1번 출구로 나가면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가 펼쳐진다.

아파트 측면에 안양천이 소리없이 흐르고,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는 둑방길이 있다. 조용한 주거 단지다. 오래된 아파트와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가 함께 있다. 낮에는 미친듯이 시끄럽지만 신도림동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밤에 고성방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신도림 둑방길

여러 개의 역을 거치는 동안 덜컹거리던 머릿속을 부여잡고 신도림역에 내려, 조심스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가족과 함께 밥을 나누어 먹고 TV를 좀 보다가, 혹은 책을 좀 보다가 잠드는 동네다.


2번 출구로 나가면 테크노마트가 있는데, 그쪽은 조금 더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 그리고 빌라와 다세대주택, 단독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먹자골목이 있다. 1번 출구로 나가면 먹을 게 없고 2번 출구로 나가야 먹을 게 있다.


강촌도 춘천도 아닌데 닭갈비집이 몇 군데 있고(심지어 맛도 춘천 못지 않다) 작은 오뎅바가 있고 곱창, 삼겹살, 닭, 온갖 육류가 불판 위에서 밤이 늦도록 지글거린다.

그러나 유흥가는 아니다. 각자 회식할 거 하고, 놀 거 놀고 집으로 돌아간다.


불이 꺼진 신도림은 고요하다. 물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더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론가 가야 하기 때문에 돌아다닌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지는 거리.


이웃한 문래동, 목동, 개봉동, 대림동, 영등포 등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그래서 이곳저곳 놀러 다니기도 좋았다. 평평하고 경사가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문화예술을 느끼고 싶으면 문래로, 오래되고 복잡한 구도심에 가고 싶으면 영등포로, 조용히 있고 싶으면 목동으로, 어디든 자전거로 금방이었다.


신도림 그 자체는 끈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쾌적했다.

잘 정돈된 도시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살아가며(그렇다고 강남, 목동처럼 굉장한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아니고), 집 바로 앞에 있는 현대백화점이나 이마트. 홈플러스에서 쇼핑을 하는, 그러면서도 꼰대 같은 느낌보다는 젊고 성실한 이미지를 가진다.


신도림에 살 때, 나는 그들 못지 않게 잘 정돈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신도림동에 남아있는 철공소의 저녁


이른 아침부터 뜨겁도록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떴고, 프렌치토스트, 방울토마토로 아침을 대신하고 출근을 했다. 남들보다 아주 이른 퇴근을 하면 집으로 돌아와 작업을 했다. 해가 지면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며 조용히 명상했고, 밤이 되면 안양천으로 나가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의 불빛이 산발적으로 꺼지기 시작할 때쯤 나도 잠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병들지 않고 맑은 정신을 유지했던 기간이었다.

쉽게 상처받는 약해빠진 마음이야 어쩔 수 없으나 쉽게 마음이 풀렸다. 그 무엇도 안정된 바가 없는 나조차도 안정감을 느꼈다.


신도림은 그랬다.

바르고 세련된 도시 사람처럼 살고 싶어지는,

큰 야망을 품고 높은 이상을 좇아가기 보다는 내 안정된 삶에 만족하며 현재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지만 그 발이 향하는 곳은 다름아닌 집이었던,

그래서 정말로 집 같았던 동네.

1번 출구 가는 길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는 하지 않았어도

거기서는 그 어느 때보다 성실히 돈을 벌고, 운동하고, 놀고, 학자금도 갚고, 사랑도 했다.

신도림이 그리운지, 신도림에 살았던 내가 그리운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으나


그 시절에는

매일매일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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