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로진 Apr 12. 2021

[왓챠 영화] 녹색 광선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기

스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웨이브(wavve)에도 있습니다. 


*


프랑스의 국민 소설가 쥘 베른의 소설과 제목이 같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는 쥘 베른이라 하면 <해저 2만리>를 가장 먼저 떠올리겠으나 프랑스에서는 쥘 베른의 공상 세계를 실제라고 믿고 추종하는 '베르니안'이 있을 정도다. 동명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고, 영화는 어느 겨울에 봤던 것 같다. 겨울에 보면 좋은 영화일까, 여름에 보면 좋은 영화일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소 정서가 맞지 않을 수 있겠다. 길고 긴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지 걱정할 일이 우리에겐 없지 않은가.


출처: 네이버 영화


주인공 델핀. 길을 걷다 카드 한 장을 줍는다. 스페이드 퀸, 행운의 색은 녹색. 프랑스 사람들은 아주 긴 여름휴가를 보낸다고 한다. 델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같이 여행가기로 한 친구와 약속이 틀어지고, 애인과도 헤어져 같이 휴가 갈 사람이 없다. 휴가를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델핀을 보면 굉장히 무기력해 보이고, 휴가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은데 휴가를 꼭 가야만 한다 하니, 이건 프랑스 문화인가 싶다.


휴가를 못 가게 되니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조언도 얻어 보지만 쉽지 않다. 별자리 운 같은 걸 보면서 어떤 가슴 뛰는 일을 기대해 보기도 하지만, 별자리 운도 썩 좋지는 않다. 그런 와중에 친구와 조금 말다툼을 하고, 갑자기 울어버리는 델핀. 다른 친구가 델핀을 달래 보려 하지만 델핀 스스로도 자기가 왜 우는지 모른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휴가에 나서는 것도 아니고, 혼자 하기도 싫고, 친구가 하는 말도 듣기 싫다. 한편으로는 왜 친구를 내버려두지 않는가. 뜬금없지만, 평소 충고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는가 반성하게 된다.


그래도 친구가 좋다. 친구는 자기 고향인 쉘브르로 같이 가자고 한다. 친구는 밝고 명랑하다. 친구네 가족도 그렇다. 고기가 한 상 차려진 식탁에서도 델핀은 그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붉은 고기를 먹기 싫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델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바다 마을까지 갔지만 델핀은 수영도 하기 싫고, 고기도 먹기 싫고, 멀미가 심해서 배도 타기 싫다. 그저 산책을 할 뿐인데, 녹음이 무성한 숲길을 걸으며 또 울음이 터져 나온다. 


조금 예민한 사람들은 무던한 사람들 사이에 쉽게 끼지 못한다. 예민함은 잘못이 아니라 기질적인 다름이다. 남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들도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한번 더 생각해야 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델핀의 채식주의를 가볍게 무시하는 쉘브르의 친구 가족들처럼, 예민한 사람에게 "너무 예민하다"는 힐난을 하는 것은 너무 쉽다. 예민하기 때문에 다른 문제가 눈에 보이는 것뿐인데 말이다.


결국 쉘브르에서 파리로 돌아온 델핀. 갑자기 알프스 산악지대로 간다. 전 남자친구가 있는 곳이다. 가서도 좀 걷다가 하루만에 돌아온다. 불행 중 다행인지, 파리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 스페인 국경과 가까운 비아리츠로 가게 된다. 친구의 아파트다. 비아리츠에도 해변이 있어, 델핀은 물에도 들어갔다 나오고 해변에 누워서 책도 읽는다. 정말 재미없어 보이게 논다. 


그러다 할머니들이 '녹색 광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우연히 듣게 된다. 할아버지 한 명이 녹색 광선에 대해 거창하게 설명한다. 맑은 날 수평선으로 해가 넘어갈 때 잠깐 보이는 초록색 빛을 보면 자신과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나. 어딜 가나 설명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언젠가 어떤 늪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속 모든 아저씨들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었다. 비아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에서 온 레나라는 친구를 잠깐 사귀기도 한다. 그러나 레나는 너무 인싸다. 남자들이랑도 잘 어울려 놀고, 무엇보다 혼자서도 너무 즐겁게 논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인싸들의 모습을 매체에서 보는 게 너무 익숙한 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자기 스스로 모든 걸 결정하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내는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그들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고 외롭지 않을까. 외롭다고 해서 아무나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아리츠에서의 휴가도 실패. 델핀은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 기차역에서 책을 읽고 있다, 우연히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남자는 생 장 드 뤼즈로 간다. 비아리츠에서 가깝고, 아름다운 마을이라 소개한다. 우리의 소심한 델핀, 웬일로 남자에게 같이 가도 되냐고 묻는다. 안 될 게 뭐람. 둘은 생 장 드 뤼즈로 간다. 바닷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던 그들의 눈앞에 잠깐 녹색 광선이 빛난다. 


*


팡팡 터지는 블록버스터 영화, 자극적인 연출에 길들여진 눈은 <녹색 광선>의 감정을 천천히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오래된 16mm 필름 영화이기도 하고, 대사가 많지도 않으며 주인공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델핀과 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어쩌면 그게 나일 수도 있다. 델핀이 너무 싫고 짜증난다면, 어쩌면 델핀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좋은 걸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가 보다 하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면 그냥 싫은 줄 알아야 한다. 좋고 싫음을 분명히 말하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마냥 좋은 걸 좋다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려면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니 자기 감정을 말할 때도 "좋은 것 같다"고 할 수밖에. 교정하고 바꾸려드는 순간부터 비극은 발생한다. 


이 영화를 볼 때 너무 답답했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생각난다. 참 이상한 영화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준 심사위원들도 그랬을까.

작가의 이전글 [넷플릭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