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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pr 14. 2021

[넷플릭스 영화] 동주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스포가 있습니다.


*


실존 인물을 다루려거든 응당 이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반열에 항상 이름이 올라가는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찬찬히, 거칠게 담아낸다. 윤동주는 글쎄, 이육사나 한용운처럼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섬세한 문장들이 우리의 가슴에 별이 되어 남아있을 뿐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부끄러움'의 정서가 독립운동에 나서지 않고 집에서 시만 썼기 때문이라고 했던 선생의 말이 얼핏 기억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일제가 동주를 취조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어 동주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고, 다시 취조, 연희전문 시절, 이런 식의 교차편집으로 구성된다. 더불어 윤동주에 비해 덜 주목받았던 독립운동가 송몽규를 비중있게 다룬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사촌으로, 북간도에서부터 형제처럼 지냈다.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먼저 신춘문예로 등단한다. 영화의 첫 부분에 송몽규가 윤동주에게 백석 시집을 선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둘 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것 같다. 송몽규가 소설가로 덜 주목받은 까닭은 그의 인생을 문학이 아니라 독립운동에 바쳤기 때문일 거다. 송몽규는 말한다. "너는 시를 쓰라. 총은 내가 든다."


나란히 연희전문에 진학하는 두 사람. 윤동주는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과에 등록한다. 같이 방을 쓰면서도 송몽규는 잡지를 만들고, 윤동주는 거기에 시를 투고하는 등 송몽규에 비해 윤동주는 소극적이다. 그런 윤동주를 지키고 싶었을까. 몽규의 활동은 동주에게 비밀이다. 다만 옥천 유지의 딸이자 옥천의 시인 정지용과 아는 여진을 소개시켜 준다. 여진 덕분에 동주는 존경하던 정지용을 만나게 된다. 


논외로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은 한국 모더니즘 시의 정수를 보여준다. 1945년 이후 절필한 것이 안타깝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로 시작하여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로 끝나는 그의 시 <향수>는 정말 아름답다. 뜬금없지만 CJ대한통운으로 배송 중인 택배가 옥천HUB에 있다는 메시지를 볼 때마다 그 시가 떠오른다.


조선에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결국 두 사람은 일본으로 간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동주는 몽규보다 항상 뒤처진다. 신춘문예로 몽규는 등단하고, 동주는 등단하지 못했고, 연희전문을 졸업할 때도 몽규는 우수상을 받지만 동주는 호명되지 않는다. 우수상을 받은 자리에서 찢어버리는 몽규의 모습을 뒤돌아 볼 뿐이다. 일본에 가서도 몽규는 교토제국대학에 입학하지만 동주는 도쿄의 릿쿄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교수와 쿠미의 도움을 받아 시집을 출간할 수 있게 된 동주. 하지만 몽규는 지금 북간도로 가자고 한다. 동주는 시집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골목 너머로 도망치는 몽규와 함께 내레이션으로 동주의 시 <자화상>이 겹쳐진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부분


한 사나이, 미워져 돌아간 한 사나이, 그리고 가엽고 그리운 그 사나이는 동주 자신이자 몽규일 것이다. 다음 날 따라가겠다고, 현해탄에서 만나자고 했던 그 사나이와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쿠미는 번역한 동주의 시를 엮어 동주에게 건넨다. 시집의 제목이 뭐냐고 묻자, 동주는 냅킨에 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일본경찰이 카페에 들이닥친다.


이런 시대에 시를 쓴다고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시인 윤동주. 그리고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던 열사 송몽규는 잊혀서는 안 될 인물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 이런 세상에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는 걸 원했던 것을, 앞장서지 못하고 몽규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게 부끄러워 서명조차 못하는 동주의 마음. 조서에 나온 혐의대로 그 무엇도 하지 못해 원통한 몽규의 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며, 이 영화는 그런 이유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


동주는 몽규보다 먼저 죽는다. 광복을 얼마 앞두지 않은 때였다. 일본에는 패망의 기운이 도사리고, 조선인 포로들에게 수상한 실험을 계속한다. 후쿠시마 바닷물 주사라는데,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잊어서는 안 된다.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영화 촬영 전 송몽규 선생의 묘를 직접 찾아가고, 선생께 편지를 올리며 진심으로 연기한 배우 박정민을 앞으로도 응원하고 싶다. 시인 윤동주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겠다고 다짐한 강하늘도. 최근 역사왜곡으로 문제가 된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과는 상반된 행보다. 


돈이면 나라도 팔겠다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시국이다. 이러다 정말 나라를 빼앗긴다면(혹은 나라가 팔린다면) 나는 몽규가 될 것인가 동주가 될 것인가 생각해본다. 비겁한 나는 몽규도, 동주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부끄러운 사람이 되진 않아야겠다. 윤동주는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는데, 그에 관한 영화에 대해 이렇게 쉽게 써도 될까.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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