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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ug 03. 2021

[넷플릭스 영화] 나비효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스포가 있습니다.


*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폭풍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고 하는, 카오스이론에 바탕을 둔다. 


나는 기억력이 제법 좋은 편이다. 어느 시점들을 떠올리면 그때의 공기와 날씨와 냄새, 소리들이 공감각적으로 떠오른다. 그것도 나름은 재능이라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나를 미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기억들은 그냥 잊혀야만 한다. 때때로 나는 중학생이었던 어느 오후를 떠올린다. 친구네 집, god의 노래, 우리가 입고 있던 교복과 그 친구의 엄마 목소리, 쫓기듯 도망치다가 하수구에 얼굴을 박고 토를 하던 순간. 나는 그때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볼 것이다. 그때 A를 하지 않고 B를 했다면, 지금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때 A를 만나지 않고 B를 만났더라면, 지금 행복하지 않을까? 혹은 그때 어떤 행동을 했다면, 하지 않았다면. 실존주의 철학에서 인간은 던져진 존재이며,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삶을 만들어간다. 실존주의의 대표주자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삶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그러므로 SF, 스릴러로 분류되는 이 영화는 선택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다. 


출처: 네이버 영화



에반의 편지로 영화는 시작된다. '내 계획이 성공한다면,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반을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시점은 에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에반의 어린 시절을 보자. 아빠는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고, 엄마는 간호사. 학교에 에반을 태워주고 출근하려는 엄마를 에반의 선생님이 다급히 부른다. 에반의 엄마는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장래희망이라고 그린 그림을 본다. 그리고 며칠 뒤,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서 있는 에반을 본다.


에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블랙아웃)"고 말한다. 이후로도 에반은 종종 블랙아웃 상태에 빠진다. 케일리와 토미네 집, 케일리 아빠의 카메라 앞에서 옷을 홀딱 벗고 있던 순간, 케일리, 토미, 레니와 함께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이고 우체통에 넣었던 순간, 토미가 자신의 강아지 크로켓을 죽이려고 했던 순간들. 


한편, 정신과에서는 에반의 블랙아웃에 대해 '일기를 써보라'는 조언과 함께 그 원인으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압박감'을 가정한다. 그래서 몇 년간 피해왔지만, 아버지를 한번 만난다. 결국 에반에게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공격하려는 아버지는 병원 관계자에게 과잉진압을 당해 사망한다. 


그렇게 청소년이 된다. 다이너마이트 사건 이후 에반의 엄마는 이사를 감행한다. 에반은 케일리에게 "너를 위해서 다시 돌아올게"라고 쓴 노트를 차창 너머로 보여준다. 


7년 뒤, 에반은 대학생이고,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에반의 룸메이트는 아무래도 컬트문화를 숭상하는 것 같다. 일단 대학에서 주류를 이루는 학생은 아니라는 거다. 에반은 7년째 블랙아웃을 겪지 않은 기념으로 룸메이트와 함께 나가 술을 마시고, 여자를 꼬셔 방으로 데려온다. 남의 집을 함부로 뒤져서는 안 되지만, 영화에서는 누군가 뒤져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여자는 침대 밑을 뒤지다가 에반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를 읽으면 과거의 그 시점, 블랙아웃된 시점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한 에반. 그 길로 고향 동네를 찾아간다. 고향에서 만난 케일리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케일리에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에반이 묻자, 케일리는 그런 걸 물으러 이제야 왔냐며 화를 내고는 가버린다. 에반이 돌아왔을 때 케일리가 자살했다는 토미의 음성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자, 이제 에반은 케일리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한다.


만약 케일리의 아버지가 아동성애자였고, 케일리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에반은 케일리네 지하실에서 영화를 찍던 장면으로 돌아가 그 아버지에게 경고를 날린다. 케일리를 지켰더니 여러 개의 평행우주 중 하나로 이동한 듯하다. 여학생클럽에 가입되어 있는 케일리와의 행복한 데이트, 하지만 토미는 여전히 엇나갔었고, 에반을 죽이러 온다. 실수로 토미를 죽여버린 에반은 교도소에 갇힌다. 


교도소에서의 우여곡절은 생략하고,  크로켓을 살렸더라면?

크로켓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자루를 풀 수 없다던 레니의 말을 기억한 채로 과거로 돌아간다. 크로켓을 묶어둔 자루를 자르려고 날카로운 철을 주워 토미에게 가는 에반과 케일리, 레니. 레니의 손에 쥐어져 있던 금속은 크로켓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토미를 죽여버린다. 레니는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에반은 이제 알게 된다.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했던 그 증상이 자신에게도 발현했음을.


아버지에게 과거를 바꾸는 방법을 물어본다면?

다시 돌아가 보자. 이제 에반은 아버지를 만난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아버지. 하지만 호기롭게도 성공하면 엽서 보내겠다는 에반. 아버지는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며 에반을 죽이려고 한다. 이번엔 바꾼 것도, 바뀐 것도 없다. 케일리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 에반은 그녀를 찾아간다. 케일리는 매춘부가 되어 있다. 그녀에게 이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믿지도 않을 뿐더러, 에반에게 저주를 퍼붓고는 사라진다.


이 모든 게 트라우마 때문일까. 그렇다면 다이너마이트로 인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에반은 다이너마이트가 터지기 전, 우체통으로 다가가 아기와 엄마에게 도망가라고 외친다. 토미는 몸을 날려 그들을 지킨다. 눈을 떠 보니 레니와 케일리는 연인 사이고, 토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있다. 에반의 팔은 날아가버렸다. 엄마는 속상한 마음에 줄담배를 피워 폐암에 걸렸다. 환자카드에 "삽관술 금지"라는 문구가 보인다. 엄마를 살려야 하니, 다시 또 일기를 읽는다.


아예 다이너마이트가 없었으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

비디오를 찍던 그 지하실로 돌아간 에반. 다이너마이트를 애초에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러다 실수로 케일리에게 다이너마이트가 굴러가고, 케일리는 또 죽는다. 눈을 떠 보니 정신병원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은 다 허상이다. 케일리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지금까지 대학생, 교도소, 장애인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현실을 회피하는 망상증이었다. 의사는 에반의 아버지도 그랬다고 흘리듯 말한다. 일기장이 아닌 사진첩이었지만. 그래, 그거다. 


다시 영화는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에반은 케일리를 처음 만나던 날에 찍은 홈비디오를 재생한다. 그리고 그때로 돌아가 케일리에게 "네가 너무 싫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후로도 친해지지 않고, 그렇게 영영 모르는 사이로 자란다. 잠에서 깨어난 에반, 옆에는 레니가 있다. 케일리는 어떻게 되었냐고 묻자 레니는 "케일리가 누군데?"라고 대답한다. 안도한 에반은 일기장을 다 태워버린다.


그렇게 에반은 정상적으로 대학도 졸업하고, 뉴욕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한다. 엄마와 통화하며 걷는 에반의 옆으로 스쳐가는 한 여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에반도 마찬가지다. 케일리였다. 뉴욕의 커리어우먼이 된 케일리.  에반은 이번 선택에서 케일리와의 사랑을 포기했다. 그러게, 어떤 인연은 아예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 


여기까지가 넷플릭스에서 제공되는 이야기의 끝이다.  


유튜브 등을 찾아보면 약 3분 가량 되는 감독판 결말을 볼 수 있다.


뱃속 아이를 두 번 사산하고 기적적으로 세 번째 아이를 가진 에반의 엄마와 엄마를 비디오카메라로 찍고 있는 아빠가 있다. 태아는 갑자기 자신의 목을 탯줄로 감는다. 아예 태어나지 않음을 선택한 것. 아이에게 삽관술을 시도하지만 안 된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행복한 토미와 케일리의 가족, 잘 자란 아이들, 행복은 희생을 통해 얻어진다는 토미의 졸업 연설. 누군가와 결혼식을 올리며 행복해 하는 케일리의 미소. 


이 모든 순간에 에반은 없다.

그리고 이 결정은 벌써 세 번째다.


*


상처받은 아이가 제대로 돌봄받지 못했을 때,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강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 큰 우리들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받는 것도 비슷하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걸 어렵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나비효과>의 주인공들은 폭력과 무관심 등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이다. 함께 불행을 경험했던 친구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에반은 과거로 돌아가보지만, 과거의 행동 하나를 바꿈으로써 일어나는 변화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에반의 아버지 말마따나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모두를 다 구할 수 없고, 모든 상처들을 다 치료할 수 없다.


내가 한 선택이 누군가에게 반향을 불어일으킬 수 있을까. 내가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 친구들에게 이건 아니라고 말했을까? 그래서 우리 모두의 삶이 달라졌을까.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던 그 모든 순간에 개입할 수 있다면, 지금의 우리는 행복할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나와 친구들이, 나의 가족들이 어떤 평행우주에서 기가 막히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좋겠다. 내가 가보지 못하더라도.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두자. 쉽지 않겠지만 연습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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