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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ug 06. 2021

[넷플릭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스포가 있습니다.


*


"위대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몇 편 있다.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원작 <위대한 개츠비>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코엔 형제의 <위대한 레보스키>, 실존인물인 바넘을 영화화한 <위대한 쇼맨> 등. 


<위대한 개츠비>는 원작부터 너무 좋으니 스토리는 물론이고, <물랑 루즈> 감독이 연출한 덕에 화려한 영상미까지 장착했다. 원작도 여러 번 읽었고 영화도 여러 번 봤다. 사랑의 바보 피츠제럴드는 "다시 젤다에게"라는 문구로 이 작품을 그녀에게 헌정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못할 것 같다.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이야기로 빠지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이 정도로 하자.


첫문장이 꽤 유명한 작품이다. 영화도 첫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여 시작한다. 


닉(화자)의 아버지가 닉에게 "누구를 비난하려고 할 때는, 그 사람이 너처럼 좋은 환경으로(혹은 좋은 조건으로) 타고난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라는 조언을 해 주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에 나는 무작정 '개츠비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1920년대, 경제호황으로 월스트리트가 핫해질 무렵이다. 닉 역시 문학도가 되려는 꿈을 버리고 월스트리트에 입성한다. 화려한 뉴욕의 삶, 창문마다 반짝이는 불빛들과 넘쳐나는 돈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모르고 사는 삶 속에 편입하려고 했다.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하고, 화려한 파티, 커스터마이징한 멋진 자동차가 있는 삶. 그들의 중심에 개츠비가 있다. 


웨스트에그에 사는 개츠비는 매주 돈을 때려부어 호화로운 파티를 연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개츠비의 집으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개츠비가 막대한 부를 쌓았다는 증거이긴 한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돈이 이렇게나 많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입에서 입으로 '카더라 뉴스'는 퍼져 나가지만, 어느 하나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사람들은 개츠비가 여는 파티에서 먹고 마시며 논다. 


초대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출처: 네이버 영화


개츠비는 첫사랑 데이지, 오직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파티를 연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개츠비의 원동력이었다. 닉은 데이지를 개츠비의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 순수하게 친구를 도와주는 마음으로. 닉은 개츠비에게 초대장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렇게 당당하고 여유롭던 개츠비는 순식간에 첫사랑에 빠진 소년마냥 하는 행동마다 엉성하다.


개츠비의 집에 놀러간 데이지는 너무도 황홀해한다. 데이지에게 실크, 인도면화, 플란넬 셔츠들을 던지는 개츠비와 천국에 가 있는 듯한 데이지. 기어이 데이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처음 봐"


개츠비는 처음부터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건너편에 집을 사고, 매일 선착장의 그린라이트를 보며 데이지에 대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갔다. 데이지가 좋아하는 것, 좋아할 것들을 가득 채운 채로 오직 데이지와의 사랑을 현실화하는 데만 몰두한 사랑의 바보다. 피츠제럴드와 여러모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한편, 데이지의 남편은 타고나기를 좋은 집안에서 출발하여 예일대를 졸업하고 폴로선수로 명성을 날린다. 트로피와이프인 데이지를 얻고, 정비소 하는 월터의 아내 머틀과 바람을 피운다. 입만 열면 인종, 계급, 성별,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차별적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그래도 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명망 높은 가문의 백인 남성이기에 가능한 것들.


데이지 역시 5년만에 만난 옛사랑 개츠비에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 과거의 그 사랑을 잊지못해서일까. 아닌 것 같다. 개츠비의 환상적인 파티에, 남편 톰과는 다른 개츠비의 섬세함에, 그의 눈빛에 흔들릴 뿐이다. 개츠비는 완전히 데이지 맞춤형 인간으로 진화했으니까.


그러나 현재를 버릴 만큼 과거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개츠비는 현재를 모두 부정하고, 데이지와 5년 전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원한다. 도망가지 않고, 과거를 현재로 만들자는 것. 


개츠비는 '톰을 사랑한 적 없다. 나는 평생 개츠비 한 명만을 사랑했다'는 말을, 데이지의 입으로부터 듣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데이지는 개츠비의 사주에 따라 자기가 사랑하는 건 남편 톰이 아니라 개츠비라고, 5년간의 결혼생활은 불행했으며 이제 개츠비와 함께하겠다고 선언하려고 해보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사실 톰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그렇지 않은가. 영원할 것 같고, 단 하나밖에 없을 것 같던 사랑도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사랑을 하게 되고, 울고불고 했던 날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개츠비는 그러지 못했지만.


한편 톰은 개츠비에 대한 뒷조사를 마친 상태. '당신 같은 사기꾼과 우리는 피부터 다르다'고 말하는 톰. 개츠비가 가진 열등감의 근원을 기어이 건들고 만다. 데이지와 개츠비는 개츠비의 노란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먼저 돌아간다. 톰과 그 외의 사람들은 톰의 파란 쿠페를 타고 가다 길에서 교통사고가 난 걸 목격한다. 피해자는 다름아닌 톰의 내연녀 머틀이다. 


톰은 개츠비에게 모든 걸 뒤집어 씌운다. 교통사고도, 불륜도. 시내에 나갈 때 개츠비와 차를 바꿔 타고 갔기 때문에 머틀이 노란색 차에 뛰어든 걸 알면서도.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리지만, 닉은 안다. 데이지가 개츠비에게 갈 생각이 없음을. 그리고 닉이 출근했을 때, 개츠비는 죽은 머틀의 남편 월터의 총을 맞고 죽는다. 월터도 그 자리에서 자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다. 매주 그의 집을 들락거리던 인물들도, 국회의원도, 경찰청장도, 데이지마저도. 누구도 찾지 않는 쓸쓸한 장례식을 닉 홀로 지킨다. 언론도 개츠비에게 모든 걸 다 뒤집어 씌운다. 밀주판매, 불륜, 뺑소니. 뉴욕 생활에 환멸을 느낀 닉은 뉴욕을 떠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닉은 개츠비만큼 희망적이고 자기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확신하는,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 개츠비만큼 순수한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앞으로의 인생에는 데이지와 톰 같은 위선자들밖에 만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닉이 쓰던 작품을 탈고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처음 제목은 <Gatsby>였으나 마지막에 펜으로 덧붙인다. <The Great Gatsby>.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영화도 소설도 끝내 너무 심란하고 답답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개츠비는 멋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2009,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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