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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ug 25. 2021

<블라인드 사이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블라인드 사이드> 리뷰

스포가 있습니다.


*


미국판 '감동 실화'를 내세운 영화 중 백인-흑인 구도의 작품들이 꽤 있다. 예컨대 흑인 하녀들의 해방운동을 다룬 <헬프>, 앞서 기록했던 영화 중 하나인 <그린북>, 그 외에도 수많은 영화들이 있겠으나 <블라인드 사이드>도 그렇다.


이런 영화들을 '백인 구원 서사'라 일컫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불편함을 느꼈다면,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한없이 동정심 많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상위층 백인들의 선민의식. 이 서사들은 그들의 부와 백인으로서 가지는 권력, 그것도 모자라 인간미까지 부여한다. 백인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이 이야기는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본인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데, 영화 속 오어 캐릭터가 살짝 모자란 아이처럼 나오기 때문이란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미식축구 용어다. 마이클 오어의 포지션이 공을 받아 던져주는 쿼터백을 보호하는 왼쪽 태클이라 쿼터백이 공을 던지려고 하면 왼쪽이 안 보인다. 말 그대로 안 보이는 쪽, 사각지대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야기는 마이클 오어가 상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오어가 1986년생이니 시대상으로는 2000년대 초반. 그리 멀지 않은 과거임에도 인종차별이 만연하다. 오어, 영화에서는 빅 마이크 엄마는 마약중독자, 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알 길이 없고 흑인 빈민가에 살면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 기초학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학생인데 친구 아버지가 학교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명문고에 입학한다.


극명하게 반대하는 선생도 있다. 학력이 너무 떨어지고 수업에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염려 때문이다. 체육 코치만은 환영한다. 빅 마이크가 창밖에서 농구하는 장면을 보고는, '저거 물건이네' 한 거다. 그렇게 학교에 입학하게 된 오어는 예상대로 수업을 못 따라간다. 다만 배려심 점수는 상위 2%다.


다만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데, 제목이 '하얀 벽'이다.

온통 흰색 페인트가 발려있는, 온통 백인뿐인 공간에서 흑인인 자신의 정체성은 얼마나 괴리가 있는가. 선생의 말마따나 '흰 페인트에 빠진 파리' 정도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학교 밖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어린 아이들도 빅 마이크를 피한다. 그때 쪼그만 아이 하나가 그렇게 해서 친구가 되겠냐고 다그친다. 션 투오이 주니어, SJ다. SJ는 관심 받기 좋아하는, 그야말로 관종이다. 오어는 몰랐을 거다. 이 관종 덕분에 인생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빅 마이크는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눈치가 보여 결국 학교 체육관에서 생활한다. 갈아입을 옷이라고는 티셔츠 한 장뿐이다. 추운 날에도 반팔 티셔츠 하나다. 어느 추운 날, 체육관으로 가고 있던 그의 옆에 차 한 대가 선다. 바로 SJ의 부모다. SJ의 아버지 션은 미시시피 대학 농구 선수, 어머니 리 앤은 같은 대학 치어리더 출신이다.


그렇게 길에서 마주친 인연으로 빅 마이크는 SJ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것도 그의 복이라면 복이겠다. 조용히 나가려고 했지만 SJ의 엄마 리 앤이 붙잡는다. 빅 마이크는 의사표현도 전혀 하지 않는다. 


참, 딱 하나 호불호를 표현한 게 있는데 빅 마이크라고 불리는 걸 싫어한다는 것. 


리 앤은 마이클을 데리고 옷도 사주고 갈 곳이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서 지내라며 방도 내어준다. 신분증이 필요한 마이클을 위해 법정보호자도 되어주는데다가 차까지 한 대 사준다.


그러다 별안간 마이클은 풋볼팀에 들어가게 된다. 별안간은 아니겠고 아마 입학 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풋볼팀에 들어가는 과정은 전혀 설명되어있지 않다.


공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한다는 마이클을 데려다 놓았더니 이거, 아무것도 모른다. 룰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몸을 쓸 줄도 모른다. 그래서 SJ의 지휘 아래 특급훈련에 들어간다. SJ는 키도 마이클의 허리만큼밖에 오지 않는 꼬맹이인데 아주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킨다. 


거기에 플러스, 아무리 말해도 공격력이 없는 마이클에게 리 앤이 말한다. 팀은 네가 지켜야 할 가족이라고. 빈민거주지역에 들어갔다가 위협적인 흑인들로부터 리 앤을 보호했듯이, 선물받은 차를 타고 SJ와 쇼핑가다 사고가 났을 때 SJ를 지켰듯이 팀을 지켜야 한다고. 


마이클의 풋볼 실력은 급상승한다. 거의 SK바이오팜 상장 급이다. 

첫 경기를 보고 각 대학의 코치들이 러브콜을 보낸다. 수십통의 전화가 빗발치고 코치들이 직접 집으로 찾아온다. 그야말로 이제 성공의 길에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성적이 너무 낮은 것. 


외국 운동선수들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여 평생을 한 종목에 매달리고, 금메달을 따느냐 못 따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난다. 메달이란 상위 3명만 주는 것인데, 그 좁은 틈에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아무튼, 리 앤과 션은 마이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미시시피대학 출신의 과외선생도 붙여준다. 기적적으로 장학생 기준인 2.5점을 겨우겨우 남긴 마이클. 대학 선택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미시시피대학 거액후원자들이 일부러 스포츠유망주를 데려다 키우며 미시시피대학에 입학하도록 한 것이 아니냐는 파문이 인다.


그 말을 듣고 충격받은 마이클은 잠시 가출하지만, 며칠 뒤 "엄마"라고 부르며 리 앤에게 전화를 건다. 조사관을 만나 마이클은 말한다. 그 사람들이 왜 미시시피대학에 보내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왜 미시시피대학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우리 가족이 다녔던 학교이기 때문"이라고.


*


SJ를 만나기 전 마이클은 돌아갈 집이 없었다. 마약중독자 엄마로부터 분리된 이후, 남의 집만을 전전했다. 거기다 덩치도 오죽 큰가. 청소년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슬픔은 아니다. 보통 꿈도 희망도 없다. 자기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지고 박살나든 누군가가 나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큼 즐거운 길이 있을까. 매년 명절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 정체는 상상을 초월한다. 집에 가기 위해서. 오직 집이 거기에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라야 한다. 좋은 인간을 길러내는 데는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점점 노키즈존 식당, 카페가 늘어간다. 벌써부터 배척과 차별을 경험한다. 혐오는 약자를 향한다. 요즘 세상에 차별이 어디있냐는 생각, 또는 차별받을 만 하니까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강자들 쪽에 서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자기를 점검해야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2000년대 초반, 지금으로부터 20년도 안 된 이야기다. 작년에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있었고, 올해는 아시안을 향한 테러가 몇 차례 있었다. 


사실 오어는 운이 굉장히 좋은 케이스이지 않나. 감동 실화라면 어디에 감동을 받아야 하나. 부모없는 흑인 아이를 받아준 투오이 부부, 흑인을 배척하지 않은 미국 가족, 그들의 도움으로 미식축구계에서 성공한 오어?


다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었던 것을 가능케했다는 점,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진실된 사랑이 연료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 사랑이 실제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영화다.


덧. 

1) 우리의 꼬맹이 관종 션 투오이 주니어는 쑥쑥 자라 농구선수가 된다.

2) 마이클 오어는 이 영화를 무지 싫어하고, 안 보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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