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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ug 23. 2021

사실은 잊히더라도 이야기는 오래오래 남아서

<빅 피쉬> 리뷰

스포가 있습니다.


*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세헤라자데는 천일 밤 동안 이야기를 만들어낸 덕분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삼국지는 몇천년을 이어져 내려온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오늘까지도 재창조된다. 셰익스피어가 Swag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는 것에 깜짝 놀라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만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다. 그럼에도 이야기들은 끝없이 만들어진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세계에 빠져든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쉽게 과몰입한다.


팀 버튼은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이야기보다는 이상한 장면들, 이상한 연출, 이상한 사람들. 감독 본인도 어릴 때 이상한 아이였던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교마다 그런 아이들이 하나씩 있긴 하다. 그런 면에서 오타쿠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상한 것이 튀어나오거나 기괴한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연출하는 팀 버튼이 <빅 피쉬>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영화를 제작할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영향도 크다고. 감동적인 스토리가 낯설긴 하지만, 팀 버튼 특유의 환상성과 영상미는 가지고 가는 영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아들 윌 블룸은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이 싫다. 입만 열면 허풍인데다, 믿을 만한 허풍도 아니며 온 동네마다 거짓말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윌은 그런 아버지와 척을 지고 몇 년을 연락하지 않은 채 살았다. 그런 아버지가 암에 걸려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윌은 아내 조세핀과 함께 고향집을 찾아간다. 병상에 누워서도 "내가 왕년에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아버지가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착한 며느리 조세핀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다. 신문기자인 에드워드는 마치 취재하듯 아버지 허풍의 진위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조사를 시작한다.


에드워드의 놀라운 삶


에드워드는 태어날 때부터 보통 아이가 아니었단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성장병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발명가이자 해결사, 뭐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거인을 회유하면서, 거인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숲길을 헤치며 걷던 에드워드의 눈에 이상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난다. 아직 올 때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유령들이 사는 곳 같다. 매일매일 즐거운 일만 있는 곳. 사람들이 신발을 신지 않는 곳. 그곳에서 에드워드는 평화롭고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8세의 제니는 커서 에드워드와 결혼할 거라고까지 하며, 에드워드의 신발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천국에서 안락한 삶을 보내기에는 젊은 에드워드의 모험심이 넘친다. 


겨우 마을에서 빠져나와 다시 거인 친구를 만난 에드워드. 우연히 서커스를 보러 갔다가 한 여자를 보고 반한다. 서커스 단장은 그녀가 '오르지 못할 나무'라며 일찌감치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던 에드워드. 서커스단에서 일하게 되면 그녀에 대해 하나씩 알려주겠다는 단장의 말에 에드워드는 거인 친구와 함께 열심히 일한다.


그녀는 황수선화를 좋아한다. 그것이 에드워드가 알게 된 첫 번째 정보다. 화가 난 에드워드는 씩씩거리며 단장을 찾아가는데, (너무도 팀 버튼 방식으로) 단장은 사실 늑대인간이었다! 그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녀, 산드라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산드라를 찾아간 에드워드. 하지만 산드라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 그것도 동네에서 가장 멍청한 놈이다. 우리의 영웅 에드워드는 당연히 약혼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황수선화가 가득핀 정원에서 청혼한다(포스터 속 바로 그 장면이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혼과 동시에 군입대를 하게 된 에드워드. 3년이나 산드라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위험한 일은 다 떠맡아 군생활을 단축한다. 그중 하나가 비밀문서 전달 임무였는데, 우연히 군 내 공연장에 착륙한 에드워드는 샴쌍둥이 자매를 만나 그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다.


잘나가는 세일즈맨이었던 에드워드. 우연히 은행에 갔다가 강도를 만나게 되고, 강도를 잘 설득하여 돌려보낸다. 훗날 강도는 월스트리트에서 큰돈을 벌어 에드워드에게 돈을 부쳐준다. 그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산다.


아버지 이해하기


아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뭘까. 극복해야 할 대상, 존경하는 남자, 증오하는 사람, 끝내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아들의 관계를 존경 또는 증오로 나눈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함으로써 한 남자로 성장해가는 아들들의 이야기는 수도 없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동시에 곧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한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아닌 적이 없었다."


자기가 한 이야기를 전혀 믿지 못하는 아들에게 에드워드는 말한다. 


나중에 에드워드의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윌은 의사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기자니까 아무래도 '팩트체크'일까. 사실 윌이 태어나던 날, 에드워드는 (그렇게도 싫어했던 이야기인) 커다란 물고기가 결혼반지를 물어갔던 게 아니라 일이 바빠서 병원에 와보지도 못했다. 


마침내 윌은 아버지를 조금 이해하게 된다.


임종을 눈앞에 둔 아버지는, 어렸을 때 눈이 하나밖에 없는 마녀의 유리구슬에 자기가 어떻게 죽을지 보인다고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냐고 묻는다. 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지만, 윌은 대답해준다.


휠체어를 타고 아버지와 병원을 탈출해서 멋진 자동차로 운전해서 강에 도착해요. 아버지가 만났던 모두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요. 다들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강으로 돌아가는 아버지를 보고 있어요.


"내가 본 것과 똑같아."


이 말을 남기고 에드워드는 숨을 거둔다. 에드워드의 장례식에는 실제로 거인과 서커스 단장과 샴쌍둥이는 아니지만 쌍둥이자매 등 에드워드의 이야기 속 인물들이 찾아온다.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강을 유유히 헤엄치며 영화는 끝난다.


*


사랑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에드워드는 아들에게 뉴스기사를 읽어준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어주었다. 에드워드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크고 풍성하게 만드는 일.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끝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저 하늘에 별도 따 줄 수 있어! 라는 말이 거짓이라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 말은 사랑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태어나던 순간 아버지가 부재했다는 사실을 결혼반지를 물고 간 빅 피쉬와 싸우느라 늦었다는 환상으로, 그럼으로써 태어나는 순간을 동화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아내에 대한 사랑까지 표현한다.


영화에서 표현한 대로, 

"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 있단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면!"


에드워드는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다 이야기 자체가 되어버렸다는 윌의 내레이션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은 잊혀도 이야기는 오래 남는다. 몇 백 년 전의 이야기들도 아직까지 생명을 부여받은 채로 살아있다.


나는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 것인가.

이왕이면 어항 속 예쁜 금붕어보다는 쉽게 잡히지 않는 빅 피쉬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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