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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진 Aug 21. 2021

<프랭크>, 좋아하는 걸 잘하기까지 하는 건 기적이다

<프랭크> 리뷰

스포가 있습니다.


*


재능없는 이에게 열정은 약일까 독일까. 안타깝게도 인간이 가진 능력의 대부분이 재능에서 좌우되는 것 같다. 가장 공평해보이는 공부 역시 재능이다. 진짜 열심히 공부해도 중간 정도밖에 못하는 사람도 있고, 공부도 안 하는 것 같은데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재능 또는 천재성이라 불리는 특성은 예체능계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갈 수 없는 산이 존재한다. 문제는 아주 작은 재능이다. 천재성이 결여된 작은 재능은 포기도 못하고 진전도 못하게 만든다. 재능이 있으니 눈은 높고, 나의 구림 정도도 어느 정도 알지만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나는 아주 상투적이고 정형화된, 다소 강박적 인간이어서 철철이 봄이면 봄에 들어야 하는 노래, 여름에는 또 여름이라고 들어야 할 노래, 겨울에는 토이 6집 <Thank you> 앨범을 듣는다. 특별히 10월 31일에는 <잊혀진 계절>을 듣고, 11월 1일에는 에픽하이의 <11월 1일>을 듣는다. <11월 1일>에 이런 가사가 있다.


"괴리감은 천재성의 그림자"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세상과의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물론 천재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움을 설명하려면 얼마나 망연할까.



출처: 네이버 영화


머릿속이 영감으로 가득찬 것만 같은 존. 회사를 마치고 귀가하면서도 머릿속엔 악상 생각 뿐이다. 멋진 악상을 떠올리고, 집에 와서 녹음을 해보지만 이미 유명한 노래의 코드와 일치한다는 걸  알고 실망한다. 그만큼 재능은 없고 열정은 많은 인간이다. 부지런히 트위터에 작업에 관한 글을 올리지만, 팔로워도 몇 없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어느 날, 길을 걷다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난동을 부리는 남자를 본다. 그는 밴드그룹 소론프르프브스의 키보드 연주자다. 열정맨 존은 그들이 오늘밤 공연을 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자기도 키보드 연주를 할 줄 안다는 말을 살짝 내뱉었는데, 밴드원인 돈이 오늘 저녁 9시까지 오란다.


꿈에 그리던 무대 데뷔를 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존은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간다. 연습도 없이 바로 실전이다. 프런트맨은 프랭크라는 이름의 남자다. 포스터를 장식하는 탈 쓴 남자가 바로 프랭크다. 그들의 음악은 아주 실험적이다. 존은 금세 밴드에 적응해서 화음도 넣고 키보드도 친다. 그러다 그룹 내의 마찰로 공연이 중단되고, 존은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존에게 걸려오는 전화 한 통. 돈이다. 프랭크가 존을 좋게 봤다며, 아일랜드에서 같이 공연을 하잔다. 이게 무슨 대박이냐. 존은 들뜬 마음으로 그들과 밴을 타고 아일랜드로 간다.


알고 보니 공연이 아니라 몇달 감금된 채로 앨범 작업을 하는 계획이었다. 처음에야 존도 당황하지만 이내 그들에게 익숙해져간다.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세워 작업을 하는 프랭크와 밴드 멤버들을 보며 존은 초조해진다. 프랭크에게 자기도 곡을 쓴다고 말을 해버린 바람에 그들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는데, 보통 구린 게 아니다. 멤버들은 필터링을 해가면서 말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유난히 그런 것 같다. 예술이라는 장르에 들어가버리면 작업을 비평하는 데에 여과가 없어진다. 작업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인간비평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예술적 자양분을 과거의 불행에서 얻는 경우도 많다. 예술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항상 불행 배틀 비슷한 걸 하게 되는데, 불행이라는 토양이 있어야 작품이라는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무탈하고 평범하게 살아온 존은 자신에게 불행이 결여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프랭크의 불행, 프랭크의 재능, 프랭크의 광기, 프랭크의 천재성을 흠모하고 동경하고 질투한다. 안 그래도 천재인데, 항상 탈을 쓰고 있다는 캐릭터성까지 있으니 이는 흉내내고 싶어도 흉내낼 수조차 없다. 다른 이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앨범 녹음이 끝난 날, 프랭크의 탈을 쓰고 자살한 돈을 보면 그렇다.


존은 밴드에 합류한 것이 너무도 기뻤는지, 트위터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밴드 사람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밴드에 돈이 떨어지자 할아버지의 유산을 사비로 쓴다. 유튜브에서 제법 유명해진 소론프르프브스는 큰 무대에 초대를 받기에 이른다.


멤버들은 썩 내키지 않는다. 심지어 동의도 구하지 않고 동영상을 올린 것도 화가 난다. 이들은 프랭크가 유명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 또한 시기와 질투, 동경 등 존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정작 당사자인 프랭크는 어쩐지 관심을 받아서 좋다며, 공연을 하자고 한다.


프랭크를 살살 구슬리는 존이 안 그래도 눈엣가시였는데, 프랭크가 존 편을 드니 클라라도 돌아버릴 지경이다. 결국 공연 직전에 클라라는 존의 다리를 찌르고, 멤버들도 다 떠난다. 결국 프랭크와 둘이서 공연하게 된 존. 자작곡으로 무대를 연다.


그런데 그 순간, 프랭크가 쓰러진다. 한 마디 말을 남긴 채.


"음악이 구려."


무대를 엉망으로 마친 존과 프랭크는 떠돌이 생활을 한다. 프랭크의 가면을 벗기려고 하는 존으로부터 도망가려다 프랭크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탈은 산산조각이 난다. 프랭크를 찾아 보려고 하지만 이미 사라져버렸다.


수소문 끝에 존은 프랭크를 찾아낸다. 가면을 쓴 프랭크는 여유롭고 재능있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티스트였지만 가면을 벗은 프랭크는 어쩐지 의기소침해 보인다. 프랭크의 부모는 프랭크의 정신적 문제가 그의 천재성을 더 가두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존은 알게되었을 것이다. 불행이 예술의 싹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가 아무리 극한으로 몰아세운다고 해도 프랭크가 될 수 없음을.


결국 존은 소론프르프브스 멤버들이 공연하는 장소에 프랭크와 함께 간다. 프랭크는 공허한 눈빛으로 그들과 합주를 하고, 존은 사라지고 없다.


*


존의 의욕, 존의 경제적 지원, 프랭크를 유명하게 만들어 큰 무대에 세우겠다는 열망. 그 모든 건 프랭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함이었다.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된 행동들이다.


동료들은 플랭크가 큰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꺾는다. 그것 또한 시기질투. 재능있는 자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이미 숱한 역사가 증명한다.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었으므로 비유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딜 가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있다(살리에리는 아주 대인배였다고 한다. 오히려 모차르트의 인성이 문제였다).


존은 결국 재능없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떠난다. 그건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포스터에 "똘기 충만 천재 뮤지션", "無재능 열혈 작곡가", "우리존재 파이팅"이라는 문구는 어울리지 않는다. 프랭크에게는 똘기가 없고, 존은 작곡가가 아니며, 우리존재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메시지도 없다.


좋아하는 걸 잘하기까지 하는 건 기적이다. 덕업일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우리는 대부분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살면서,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우리에게 기적은 없어도 행복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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