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입국 아프간인들에게 제공한다는 할랄 도시락, 그 진실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 처한 아프가니스탄 피란민 380여명이 특별 기여자 자격으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이들은 8주간 충북 진천군 소재 국가 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머문 뒤 퇴소할 예정입니다. 법무부는 이들에 대한 국내 정착 지원의 일환으로 할랄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이는 아프간인들의 종교적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할랄 음식이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생산 돼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음식을 일컫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행정력 낭비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었는데요, 온당한 지적일까요?
할랄, 이슬람 율법이 보증하는 상품과 서비스라는 인증 마크에 불과해
할랄 의약품, 할랄 화장품, 할랄 금융도 있어
할랄이라고 하면 무슬림이 먹는 별난 음식으로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을 의미하는 말로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하는 물건과 행위를 통칭합니다. 그러니까 이슬람 율법이 정한 기준을 충족한다는 인증을 받은 상품과 서비스라면 할랄 의약품이나 할랄 금융처럼 할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할랄은 엄격한 이슬람 율법이 보증하는 상품과 서비스라는 인증 마크인 셈입니다.
한국인만큼이나 먹거리에 진심인 무슬림
청결, 청결, 청결!
전세계 할랄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식품 산업입니다. 이는 이슬람이 먹거리를 대하는 ‘남다른’ 태도 덕분입니다. 무슬림에게 음식 섭취는 알라를 올바르게 섬길 좋은 에너지를 축적하는 행위일 뿐, 그에서 오는 생존이나 쾌락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순전히 종교적인 행위인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무슬림은 알라를 잘 섬기기 위해 정화된, 깨끗한, 좋은 음식 섭취에 골몰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독성이나 알코올 등의 유해 성분이 없는 식물이나 대개의 해물은 할랄로 분류되는 반면, 육류의 경우는 ‘금지된 것’을 의미하는 하람으로 분류되는 것도 많거니와 할랄이더라도 까다로운 정화 과정이 요구됩니다. 우선 하람으로 분류되는 육류에는 돼지, 개, 동물 피, 맹수, 맹금류, 파충류가 있습니다. 이들 이외에 할랄로 분류되는 육류의 경우 반드시 이슬람식 도축 방식을 거쳐야 합니다. 이슬람식 도축 방식은 정신이 건전한 무슬림 남성이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살아 있는 동물의 머리를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 방향으로 돌려 눕혀 날카로운 칼로 한번에 목을 딴 후, 모든 피를 제거하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도축 직전의 동물이 건강하게 살아있도록 하는 것, 동정맥을 한번에 정확히 끊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 미생물이 번식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피를 완전히 빼는 것 모두 육류를 깨끗하게 정화시키기 위한 목적인 것이지요.
HACCP 인증보다 까다로운 할랄 인증
이러한 이슬람의 남다른 도축 방식 뿐만 아니라 남다른 위생 관리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할랄 인증을 가리켜 HACCP이나 GMP 인증에 버금간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HACCP은 거의 모든 식품의 포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크인데요, 이것은 식품의 생산‧가공‧유통 전과정에 걸친 위생관리를 인증한다는 의미입니다. 할랄 인증은 이 HACCP을 기본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이외에 GMP 등의 인증시 가산점을 부여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할랄 인증이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위생 요건은 무엇일까요? 할랄 식품이 비할랄 식품과 동일한 생산 설비로 가공되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할랄 식재료가 비할랄 식재료와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되었다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HACCP이나 GMP의 경우는 갱신 기간이 3년인 반면 할랄 인증은 그보다 짧은 1년 또는 2년입니다.
피를 뺀 할랄 육류는 한식 친화적
결국 할랄 식품의 핵심은 피를 완전히 뺀 육류라는 점인데, 이는 짧은 유통 기한이 불가피합니다. 해외에서는 할랄 육류의 짧은 유통기한이 높은 신선도로 여겨져 비무슬림의 할랄 육류 소비가 점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할랄 육류를 안전하고 건강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사실 피를 완전히 뺀 육류의 경우 끓이거나 찌는 요리를 할 때 특히 빛을 발합니다. 피가 빠지면서 각종 불순물들이 제거돼 거품이 생기지 않고 누린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끓이거나 찌는 요리가 많은 한식에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요새 할랄 육류를 사용해서 조리하는 할랄 한식당이 자국민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따라오신 독자분들이라면 할랄 육류를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실텐데요. 그러나 몇 가지 꺼림칙한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육류를 도축하기 전에 올리는 기도의 제의성이라든지, 살아있는 채로 죽이는 것이 오히려 동물 학대는 아닐는지, 할랄 산업의 수익이 이슬람 포교는 물론 탈레반과 같은 테러 조직을 지원하는 데에 쓰이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들이 그것이지요. 사단법인 할랄협회 조영찬 수석위원의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봤습니다.
Q. 할랄 육류는 '제사음식'과 다름없다?
A. '제사음식'에 대한 정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기독교인이 식사 전 '감사 기도'를 올리는 것도 '제사음식'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Q. 할랄 도축 방법, 끔찍한 동물학대다?
A. 동물 학대 논란은 '기절 과정'의 허용 여부를 두고 촉발되었습니다. 이슬람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는 문제입니다만, 현재 할랄 도축 산업에서도 대체적으로 도축 전 기절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도축 방법과 크게 다른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동물 복지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도축장까지 이동거리를 최소화하고, 도착한 뒤 마실 물을 주고, 일정시간 진정하며 휴식하게 하고, 다른동물 앞에서 가축을 죽이지 않고, 도축 과정을 최대한 단축시켜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 등이지요.
Q. 할랄 산업 수익이 이슬람 포교를 위해 쓰인다?
A. 해외 할랄인증의 경우, 인증비용이 이슬람 관련 기관으로 송금된다는 이야기는 이론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송금되는 금액은 서류처리 비용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슬람 포교에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일례로 할랄 인증 기관 중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말레이시아 할랄 인증 기관 JAKIM에 국내 업체가 내는 돈은 공장 하나에 연간 130만 원 정도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불닭볶음면도 할랄이랍니다...
결국 우리 정부가 국내 입국 아프간인들에게 제공하는 할랄 도시락은 고가의 도시락이라거나 지나친 의전이 아니라, 한순간에 나라를 잃은 이들을 대하는 섬세한 행정 또는 한국인의 정이었을 따름인 것이죠. 할랄 인증을 받은 삼양의 불닭볶음면을 제공하는 것도 할랄 도시락을 제공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