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로물루스’는 에일리언 팬들에게 단비 같은 작품이다. 1과 2를 잇는 중간다리로서 훌륭한 이음새를 보인다는 차원에서 뛰어난 것은 물론, 현학적이었던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 연작이 망각했던 서스펜스와 공포를 관객에게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시리즈의 원초적 재미를 준 작품이다. 에일리언 팬이 아니더라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알바레즈 감독은 죽어가던 시리즈를 부활시켰다.
오랜만에 보는 에일리언 시리즈인 탓에, 로물루스를 보면서 에일리언의 오래된 설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검은 액체’가 바로 그것이다. 검은 액체는 쉽게 말해 인류를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만드는 마법의 비약이다. 웨이랜드-유타니(이하 W-Y)는 이 검은 액체를 만들어 인간에게 주입하길 바랐다. 우주에서 활동하기에 너무나도 연약한 인류가 찾아낸 유일한 해법이라고 그들은 믿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인류의 진화라는 대의를 위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에일리언은 이 검은 액체 실험의 최종 결과물이자 W-Y에게 있어 희망이다.
검은 액체에서 시작된 에일리언 유체와 성체, 그리고 중간 진화체들은 다른 DNA를 매개로 변이 한다. 시리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페이스 허거’는 다른 생물의 몸속에 에일리언 유충을 집어넣는다는 점에서 징그러우면서도 진화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매개체다. 그런데 에일리언의 설정들을 잘 살펴보면 같은 동족의 에일리언은 에일리언의 몸에 유충을 집어넣지 않는다. 설정상 그들은 포악한 성정을 억누르지 못한다. 상대방을 ‘먹어’ 치우든지, 혹은 유충의 ‘둥지’로 만들든지 그들은 자기와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차원에서 에일리언은 다른 종족의 DNA를 요구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동종끼리의 DNA 침식을 하지 않는 것일까? 로물루스 영화를 보면 기존 우주선의 인간들을 모판으로 삼아 에일리언이 번성한 흔적이 등장한다. 그러나 에일리언들은 그들끼리 번식할 목적으로 동족의 몸에 유충을 삽입하지 않는다. 그렇게 잔인한 에일리언이 왜 동종한테는 포악한 면모를 드러내지 않고, 심지어 극한 상황임에도 서로를 잡아먹지 않았던 것일까?
프로메테우스에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제공이 되어있다. 철저히 생체 병기로 제작되었기에 이들은 목적성을 띄고 다른 개체를 멸종시키기 위해 활동한다. 동종은 타깃이 아니기에 잡아먹기 위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목적성을 띈 무기로서 디자인되었기에 그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생명이 보일 법한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 존재의 생존을 위해 동종을 포식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생체 병기’라는 해답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진화의 트리에서 인간이 그러하듯 어떤 개체는 변이를 거듭하게 된다. 특히 에일리언처럼 다른 종족의 DNA를 갈구하는 생명이면 진화의 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다른 존재로 바뀔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태어난 에일리언이라면, 동종 포식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개체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에일리언이 충분히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 연작과 에일리언 1-4까지의 연작을 살펴보면 그런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동종 에일리언은 동종 에일리언과 대립하지 않고 하나의 군체로서 활동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진화의 트리라는 큰 가지에서 서로 반목과 대립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일까?
영화에서 이들은 AI 기반의 생체 병기라는 표현을 한다. 자가 학습을 통한 변이와 발전. 철저하게 상대를 연구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병기로 자란다는 점에서 우리는 위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들 검은 액체에서 태어난 에일리언은 본질적으로 보면 AI 생체 머신이라고 볼 수 있다. DNA를 기반으로 한 AI.
최근 AI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인간이 학습한 데이터를 먹고 성장한 AI들이 난립하면서 AI가 생성한 학습자료를 다른 AI가 학습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AI가 만든 자료를 기본 데이터로 학습한 AI가 붕괴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AI 연구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AI가 만든 자료를 AI가 학습하면 자가 붕괴가 일어나는 현상. 오픈 AI를 필두로 여러 AI 연구자들은 인간이 만든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AI가 만든 학습데이터를 AI가 학습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적인 연구자들은 AI 학습 데이터는 오직 인간이 생성한 데이터로만 성장이 가능하기에 정보 폭발이라 할 수 있는 특이점은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원래라면 AI가 생성한 데이터를 AI가 받아서 재가공 함으로써, 데이터 폭발이라는 특이점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예측했던 학자들은 절망에 빠진 것이다.
명확하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이들은 없다. 다만 추측하건대 AI가 생성한 데이터를 AI가 해석했을 때, 자가 증식한 AI 생성 데이터를 더미 데이터로 분석해 보유한 데이터를 모두 삭제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한 해석이다. 그러나 이도 완벽한 정답은 아니다. AI는 AI와의 상호 교류로 특이점을 생성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계속해서 데이터를 줘야 한다는 점에서 AI 시장은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인간이 생성한 데이터와 AI가 생성한 데이터의 차이가 본질적으로 밝혀져서 나중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현 상황을 바라봤을 때 AI의 데이터는 AI의 데이터로, 인간의 데이터는 인간의 데이터로 분류하는 것이 답으로 보인다. 동종 DNA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에일리언처럼, AI는 다른 AI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예술 작품은 미리 미래를 선취하는 경우가 있다. 에일리언도 어찌 보면 AI의 붕괴라는 미래를 예언했다는 차원에서 의도하지 않게 미래를 예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타 종족의 DNA를 흡수해야만 진화할 수 있는 에일리언, 인간의 데이터를 학습해야 발전할 수 있는 AI. 40년 전 한 천재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 작품은 놀랍게도 2024년 동시대의 문제와 공명한 것이다. 동종의 데이터를 흡수하면 소멸하는 AI는 에일리언의 생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에일리언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동종을 섭취하는 것을 피한 것이다.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면 앞서 W-Y가 하려는 행동을 재해석할 수 있다. 에일리언, 다시 말해 AI와 결합해야 W-Y는 인간이 우주에서도 적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이종 결합을 통해 진화를 꿈꾼 W-Y는 진심으로 이 미래를 실천하려 했다. 놀랍게도 현실에서 비슷한 노력을 경주하는 이가 있다. 일론 머스크. 트랜스 휴머니스트인 그는 뉴럴링크를 통해 인간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 우주 진출이라는 꿈을 위해 사업을 벌이는 일론 머스크의 행실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유사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러한 생각과 가정, 그리고 유사(Analogy)는 논리적 비약일 가능성이 높다. 로물루스에서 주인공은 합성 인간인 앤디와의 우정으로 에일리언을 격퇴하고 이바가 행성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인간-AI의 결합을 꿈꿨던 W-Y의 방식이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과 AI(합성인간)는 결합이라는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로 상호 보완하며 발전할 수 있다. 연대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이들의 우정이 빛났듯, 정답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