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의 롤러브레이드 소년
버진로드 한가운데 선 여성이 눈물을 겨우 참으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축사를 하는 중이었다. 신부의 13년 지기 친구라고 소개한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매점을 함께 가곤 했던 일화를 어제 일처럼 생생히 털어놓는 중이었다. 나는 식장 구석 어둠에 숨어 겨우 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13년이라.. 우리는 몇 년 지기지?'
조심스레 계산해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와 친구의 우정은 그녀들의 우정의 갑절이었다.
그러니까 내 친구는 원래 하얗고 작은 친구였다. 새침하게 흘겨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롤러 브레이드.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그걸 안 신는 아이는 없었지만, 내 친구는 꼭 그게 자신의 신체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곧잘 타고 다녔다. 우리는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브레이드를 신고 아파트 단지 현관의 우회 입구로 '쌩~' 하고 달려갔다.
아무래도 어릴 땐 이성 친구에게 보다 낯을 가리곤 하니, 처음부터 우리가 친하진 않았다. 같은 반이긴 했지만 크게 인식조차 못했었는데, 어머니들의 소개로 같은 과외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았다. 역시나 아파트 단지 내 가정집에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초반엔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수업이 마치면 나는 계단 현관으로, 친구는 롤러 브레이드를 타고 슈웅 소리를 내고 사라졌던 것 같다.
그러던 우리가 겨우 친해지기 시작한 건 조금 더 지나서였다. 명확한 계기 따윈 오랜 벽장 속의 출처 모를 스웨터처럼 낡아 기억나지 않지만, 인간으로서의 사회성이 어느 정도 생긴 시기였다. 동성친구뿐 아니라 이성친구도 잔뜩 사귀게 된 시기. 시간이 더 흐르고, 우리 우정의 정점. 6학년이 찾아왔다.
그땐 같은 반 친구들이 똘똘 뭉쳐 우정을 다졌다. 매일 일과를 마치면 중앙 현관이나 모두가 떠난 교실에 남아 소위 '진실게임'을 했다. 다들 이성에 눈 뜬 때였으니까. 뭐 그리 비밀이 많다고 '진실'을 찾아 헤맸는지. 우리는 좋은 단짝이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애에 대해 말해주면, 나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실제로 도와준 건 없었지만. 반대의 경우에도 정확하게 작용했다.
여치와 불여우(혹은 구미호)로 불같던 초등학교 시절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른 지방으로 전학을 갔다. 친구는 얼마 안 있어 해외로 이민을 갔다.
신도시에서 떨어져 나온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누구보다 연락하기 어려운 환경일 수 있지만, 인터넷의 도움으로 우리는 꾸준히 연락했다. 버디버디, 네이트온, 싸이월드, 페이스북 시대를 모두 거쳐 현재의 인스타그램 시대까지. 친구가 서울에 올 때마다 만났다. 내가 재학 중인 대학교에 놀러 오기도 하고,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와 점심을 먹고 가기도 했다. 나 역시 친구가 있는 해외로 여행을 가 가장 유명하다는 몰에서 저녁을 먹고, 친구 여자친구가 소개해준 루프탑 바에 가서 야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런 친구가 결혼을 했다. 롤러 브레이드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종횡무진하던 작고 하얗던 녀석이, 천장에 닿을 듯이 큰 키에 그때처럼 허연 얼굴을 하고.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해외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 준 지인들에 끊임없이 인사하며 행진했다. 너의 앞길에 언제나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찾아오길. 그때마다 그렇게 당당하게 주변 사람들을 의지하며, 특히 함께 길을 걸어가기로 한 신부와 함께 슬기롭게, 또 당당하게, 행복하게 걸어 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