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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Mar 08. 2024

아프면 아이가 된다.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부모님과 나는 멀리 산다. 꼭 성인이 되어서가 아니더라도, 떨어져 살았던 해가 몇 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터미널에서 헤어질 때마다 눈물 한두 방울을 흘려왔다. 가만 생각해 보면, 최근에는 꽤 어른스럽게 이별했던 것 같다. 사유는 아무래도 자주 보게 되어서? 언젠가 글로 쓴 적도 있는데, 일 년에 두 번씩만 본다고 생각했을 때, 최대 몇 번 더 뵐 수 있을지 계산한 이후로 두 달에 한 번씩은 부모님을 뵈러 가려 노력하고 있다. 셀 수 있던 것에서 셀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얼마 지나면 또 뵐 거라는 마음에 의연하게 헤어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힘들었다. 사실 터미널에서는 너무나 많은 연습이 되어서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긴 했지만, 내 집으로 돌아와서부터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그날 밤 무작정 어머니가 내 자취방을 찾아오는 꿈을 꿨겠나.


부모님과 있는 동안 아팠다. 처음엔 전과 다를 바 없었는데, 점심으로 매운탕 한 그릇을 해치우고, 뷰가 좋은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었는데 배에서 신호가 왔다. 그저 그런 신호였다. 화장실에 들러 근심을 해소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한데 그다음부터는 꽤 배가 아파오더니 점점 증상이 심상찮았다. 땀이 났고, 왼쪽 윗 배가 부풀어 오른 것 같기도, 쥐어짜는 것 같기도 한 통증이 심했다. 허리를 펼 수 없고 걸을 수도 없어서 카페 화장실 세면대에 두 손을 짚고 한 동안 기대어 있었다. 


'아, 이거 못 가겠다.' 

십 분 뒤면 고속버스를 타야 했지만, 불가능한 일 같았다. 화장실조차 벗어나기 어려웠으므로. 화장실에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부모님이 앉아계신 자리로 갔다. 사색이 된 나는 말도 길게 하지 못했다. 각자 휴대폰을 보다 나를 올려다본 부모님은 깜짝 놀랐다. "나 오늘 못 가."


그러다 욱. 욕지기가 올라왔다. 부모님이 뭐라 질문을 하신 것 같았는데, 내 귀엔 들리지 않아서 손사래만 치고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대낮 카페에서의 구토라니. 창피함이 느껴질 새도 없었다. 겨우 마무리하고 자리로 돌아가니, 부모님은 이미 갈 채비를 마친 상태. "가야겠나? 가자!"


평소라면 절대 잡지 않는 자동차 창문 위 손잡이를 잡았다. 복통을 참기 위해서였다. 이건 뭐, 맹장염에 비할 수 있을 만큼 아팠다. 위장이 단단히 잘못된 느낌. 불타는 느낌 같기도 하고, 위장을 빨랫감처럼 끝에서 끝을 왼손 오른손으로 잡고 쥐어짜 내는 듯도 했다.


집에 도착해서까지 고통은 가시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는 자리를 펴주셨다.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셨다. 아버지는 바로 당번 약국을 찾아 떠나셨다. 나는 거의 바로 잠에 들었고, 얼마나 지났는지 약을 사 온 아버지가 도착했다. 나는 어머니가 살뜰히 떠 와 주신 컵에 받힌 물을 들이켜고, 약을 삼켰다. 한참을 자다가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에 다시 일어났는데, 죽을 쑤신 거였다. 얼마 만에 먹는 어머니의 흰 죽인지. 못내 맛이 심심할까 감자까지 갈아서 넣어주신 흰 감자죽. 나는 입맛도 하나 없었지만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눈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현실. 엉망진창인 자취방에 홀로 어둠 속에 눕는다. 그것이 곧 내 일상이기에 그게 그다지 서럽지도, 싫지도 않다. 하지만 한 순간에 열세 살 아이에서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이 지난 감각이 낯설었다.


사실 어리지 않은 나이. 어떤 친구는 딸 둘을 연이어 낳아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해주는 마당에 나는 아직까지 아이다. 연로한 부모님껜 못할 짓이지만, 아직까지 아이인 감각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그 감각이 무척 안락해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철딱서니. 사실 철딱서니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에 비법을 묻는 이들에 겸손하게 군답시고 했던 말, "철딱서니가 없어서 그래요." 그게 사실은 참말이었다. 부동산에 주식에 출산, 육아에 모두 어른이 되는 중인데. 나는 왜.


가방에 달고 다니던 주황색 공룡 인형을 떼어냈다. 야단법석 경망스럽게 쓴 카톡 메시지를 지우고, 딱딱하게, 문어체로 바꿔 써본다. 이런다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내 안의 '어른 검사'가 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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