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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잰니 Feb 20. 2024

차였다.

그럼에도 울지 않는 이유.

새벽 시. 어제는 시간에 눈이 떠져 숨도 이루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전날의 추태가 끊임없이 재방영되었다. 비까지 추적추적 왔고, 속은 니글거렸다. 점심으로 편의점 죽을 겨우 떠밀고, 아직 친하지 않은 동료들과의 점심시간, 그들의 주말에 대해 힘겹게 반응했다. 오후가 되며 평소처럼 일에 집중하고, 친구들과의 온라인 수다로 평소다운 모습을 찾았지만, 그날은 정말 근래의 완벽했던 일상에서 손에 꼽게 힘든 날이었다.


그건 아마 무게였을 것이다. 내가 짊어진 반성이라는 짐.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해서 슬펐던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 실망해서. 나 자신이 더 이상 사랑스럽게 여겨지지 않고 조금은 혐오스러워서 마음이 더 힘들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버스에서 내려 평소와 같이 직장 근처 단골 카페에 들어서는데 깨달았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


당연히 눈치챘겠지만, 그건 나다. 나는 어제의 내 험한 꼴에 대해 충분히 반성했고, 그를 조금은 성숙하게 끌어안아 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랑하는 나니까. 그리고 잘못된 행동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럴 만했어' 편도 들어준다.


잠시 잠깐 나를 좋아한 사람이든, 좋아했다고 착각한 사람이든. 그런 사람 하나, 그런 마음 하나 잃었다고 뭐가 그리 크게 중요할까.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데. 어제 내 마음이 그렇게 힘들었던 건 가장 큰 사람 하나. 즉,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짐한다. 단호하고 굳은 표정 하나, 잠긴 목소리 하나로 단박에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은 옆에 두지 않는 편이 좋겠어.


샤워를 하면서는 잠깐 분노했고, 예전 직장으로 가는 버스를 우연히 보았을 때에는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류장에서 지금 직장으로 가는 출근 버스를 기다리면서는 '사랑이 무섭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라는 나약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길에서 돌 몇 개쯤 튀어 들었다고 아름다운 오솔길을 더 이상 걷지 못할 이유는 없으며, 그건 큰 행복의 기회에 대한 낭비이지 않을까. 인생을 살면 앞으로도 크고 작은 돌들이 몇 개씩은 더 날아들어 가만히 있던 나를 자극하고, 상처 입힐 테다.


그래도 나는 나를 잃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충만하게 사랑하면서 툭툭 흙을 털어내고, 뚜벅뚜벅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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