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기 전에

옆구리가 아픈 병과 엄마, 노을.

by 잰니

어릴 때 이상한 병을 앓았다. 엄마와 함께 걸으면 옆구리가 아픈 병.

몇 번이나 고통을 호소했는지, 엄마가 병원에 데려갈 정도였다. 의사 진단은 별 게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것 때문에 약 먹은 기억은 없으니까. 그때가 아마 내가 7~8살쯤이었을 때일 거다.


엄마는 7번으로 시작하는 버스에 나를 태우고 다녔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느낌이었다―도착하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으니까. 지금에야 젊은 엄마가 종종 숨 돌리는 여가생활이었다고 이해하지만― 사람들이 정신없이 많은 곳. 눈부신 조명 아래 반짝이는 구두와 겹겹이 늘어진 옷가지들. 몇 바퀴쯤 돌다가 지칠 때쯤 프랜차이즈 햄버거, 치킨 가게에 들렀다. 나는 이상하게 그런 곳에서 좀 심하게 징징댔는데, 그럼 가차 없이 화장실행이었다. 겁에 질려 엉엉 울어도 가차 없이 끌려가 화장실에서 혼쭐이 났다. 크게 맞은 건 아니었는데, 그때의 엄마 눈에 서린 단호함이, 당시엔 너무 무서웠다.


백화점에서 프랜차이즈 음식점, 화장실 코스를 다 돌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사람을 늘 붐비었고, 자리에 앉은 내게 엄마는 늘 명령을 내렸다.


눈 감아.


자는 척하라는 거였다. 눈을 뜨면 일어나야 하는 거라고. 어쩐지 부당한 일 같다고 여겼지만, 지친 몸을 일으키기도 싫었거니와, 무서운 엄마 눈을 다시 마주할까 순순히 눈을 감았다. 이따금씩 바깥 풍경이 궁금할 때 사람들에게 들킬까 실눈을 떠 창밖을 바라봤다. 가끔 내 앞에 서있는 아줌마들 신발 코를 훔쳐보기도 했다. 차내의 진동과 스산한 공기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잠이 솔솔 왔고, 엄마가 흔들 어깨 우면 언제나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해있었다. 그때 나는 긴 여행을 끝내고 난 후의 안도감 같은 걸 느꼈을 테다.


젊은 엄마는 항상 걸음이 빨랐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뭐에 쫓기기라도 하는 마냥. 정말 엄마는 뭐에 쫓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막내딸을 빨리 키워야 한다는 부담, 말썽쟁이 첫째 딸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압박, 희미해져 가는 당신의 미래를 곧 영영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엄마는 내 세계 자체였다. 옆구리가 저려와도, 걸음을 늦추어선 안됐다.


엄마, 좀 천천히 가.


엄마는 걸음을 곧 늦춰 주었으나, 조금 지나면 다시 빨라졌다. 엄마는 그게 어쩔 수 없는 당신 걸음이라고 했다. 일가친척 모두 그렇게 걷는다면서. 조금 분했지만, 원래 그렇게 타고났다는 데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짧은 다리로 달리듯 걸을 수밖에. 후에 학교에서 '뱁새가 황새걸음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을 배우고, "엄마는 황새고, 나는 뱁새라서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아" 징징댄 적이 있다. 엄마는 호호 웃어넘겼고, 나도 옆구리 병에 익숙해졌다.


십 수년이 흘러, 다시 현재. 20대 후반 딸과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엄마. 근 1년 만에 엄마가 서울에 왔다. 요새 뭐 입고 다니냐고, 딸 옷이나 몇 벌 사주겠다고. 1년에 겨우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서울행이 겨우 그런 이유였다. 정신없이 사람 많은 곳에 갔다. 눈부신 조명, 반짝이는 구두와 겹겹이 옷가지 늘어진 곳으로. 프랜차이즈 음식점 대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 엄마가 좋아하는 라자냐를 먹었다. 퇴근 시간 압박사를 유도하는 9호선 플랫폼. 엄마는 너무나 작고 가냘팠다.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고 느꼈다. 엄마 뒤에 서 공간을 만들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의 자그마한 자취방으로 걸어가는 길. 엄마는 많이 지쳐 보였다. 나도 과장을 조금 더 섞어 힘들다고 헥헥댔다. 엄마가 한 마디 했다.


좀 천천히 걷자.


우뚝 그 자리에 섰다. 엄마가 숨을 몰아 쉬었다. 내가 걷는 속도가 엄마에게 빠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내 예상보다 엄마는 많이..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언젠가 엄마 화장대 앞에 나란히 서서 외출 준비를 할 때, '내가 엄마의 젊음을 빼앗아 자랐구나'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것과는 사뭇 다른 충격이었다. 내 옆구리는 더 이상 저리지 않았고, 엄마의 타고난 '빠른 걸음걸이'는 어느새 느려져 있었다. 엄마의 눈은 더 이상 단호하지 않았고, 내 배려를 바라는 눈치였다.


허름한 냉장고에 채워 넣을 음식 재료를 한가득 사고서 돌아가는 길.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는 진다. 아침에 떴기 때문에. 그를 부정할 순 없다. 다만, 해가 떠있는 시간, 최선을 다해 볕을 즐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의 걸음처럼 천천히 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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