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에 사랑을 준다는 것
오랜만에 대학 동기 세모(가칭)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나한테 충격적일 만한 자극을 줬던 친구고, 또 한때나마 서로에게 굉장히 솔직했던 경험이 있던 친구였기에 종종 이만큼 멀어진 거리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동기 단체 채팅방에 어제 세모가 초대되어 들어왔다. 너무 갑자기 연락하기엔 어색함이 들어 망설여졌는데, 좋은 타이밍이라고 느껴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일 하고 계시는가?" 평범하게 안부를 묻다가 세모가 물어왔다. 못내 내가 두려워한 질문이었다. 최근 검사가 되었다는 세모 앞에 내가 하는 일은 왠지 초라해 보였기에 더 연락하는 데 주춤했구나, 하고 닥쳐서야 알게 됐다.
면접에서 소개하듯 다소 딱딱하게 하는 일을 요약한 후, 이렇게 말했다.
"적성엔 맞지 않지만, 지루하진 않아."
'보내기'를 누르자마자, 지루하지 않은 게 곧 적성에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질문이 스스로에게 던져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역시나 날카로운 세모 검사님은 그게 적성에 맞는 것 아니냐고 물어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표해야만 했다. 근데 진짜, 적성에 맞는다는 게 어떤 걸까?
일요일은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는 날이다.
일주일만큼 내가 만든 갖가지의 쓰레기를 양손에 가득 쥐어 내놓고 나니, 땀이 살짝 났다. 내겐 다소 이른 오후 10시였지만, 오늘은 빨리 씻고 하루를 마무리하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씻으면서 다시 세모와의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적성에 맞는다는 게 뭘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리지 못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니라는 옅은 확신이 들었다. 왜였을까?
어제오늘 열심히 봤던 드라마가 있다. 익숙한 이름이 연출 뒤에 떠올랐고, 그가 한때 내가 드라마 pd라는 꿈을 꾸게 자극을 준 선배라는 걸 알았다. 선배를 두 번째 만난 대학 앞 중국집에서는 입봉작이라며 단막극 대본을 보여주셨는데. 이젠 캐스트 빵빵한 장편 드라마에 이름이 맨 앞에 오는 연출이 되셨구나. 신기하고 기뻤지만 '난 뭘 했을까,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자책 가득한 의문이 더 짙었다.
지방 뉴스에서 앵커를 하다 서울에서 기자를 하는 선배, 예능을 하고 싶었지만 뉴스 피디가 된 전 회사 동료, 야식 메이트였는데 세기의 뉴스를 빵빵 터뜨린 천재 기자, 창의적인 작문으로 '이런 글을 써야 되는구나' 알게 해 줬던, 작년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았던 드라마의 후배 연출..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지나갔다. 그들은 있어야 할 곳에 있는데. 나는 아니라는 생각.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아니, 나는 오히려 지금 회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일과 회사는 다른 것이어서. 내 일을 오롯이 사랑하지 않는 이 감각.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세월을 보내면서 느꼈던, 어딘가 잘못되었으나 바로잡을 용기는 없어 시간에 뒷걸음만 쳤던 그때 그 기분. 그 감정이 너무 짙어 이렇게 오래간만에 글을 쓰게 됐다.
남들은 저마다의 일을 얼마나 사랑할까?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그러다 또, 김이나 작사가가 떠올랐다. 그도 직장인 생활을 오래 하다 하나둘 작업을 시작하면서 작사가로 전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 나도 찾아나가는 중이겠지. 찾아나가면 되지. 그러려고 최근에 시나리오 수업도 용기 내 신청했잖아.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한다.
한 편으론, pd라는 직업에 내 자아 의탁을 너무 오래 해와서, 국제공무원이 되어 세계를 누빌 모습에 오랜 시간 도취해와서, 지금의 내가 낯설고 만족스럽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그에 비해 내가 잘 모르는 저들의 삶은 그럭저럭 폼나 보여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봐야겠지. 솔직히 멋지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멋짐은 내 일을 전문적으로 해내고, 사랑하고, 온 마음을 다 쏟는 거다. 늦은 나이는 없으니까. 아니, 있겠지만, 더 늦기 전에 찾으면 되니까. 바쁘단 핑계로 잊지 말고 계속해서 고민해야지.
나는 어떤 일에 사랑을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