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친구들에게

마지막 학원 일기

by 잰니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다.


아버지 좋아하시는 단팥빵을 사겠다고 낙성대 유명한 빵집을 찾았지만 기나긴 줄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낙성대입구역에서 열차를 탔을 뿐. 평소처럼 맨 마지막 칸에 올라탔다. 평소에 자주 가던 편의점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샀다. 실장 선생님과 인사하고, 출석부를 꺼내 교실에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너희들을 기다렸다. 인수인계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뭐야?" 새로운 선생님을 보고 너희들은 수군거렸다. 너희들은 어쩌면 내가 떠난다는 걸 상상해본 적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너희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봐왔다. 그때 너희는 말 그대로 코흘리개였다. 무슨 말만 하면 볼이 빨개져선 고래고래 소리나 지를 줄 아는 꼬맹이. 지금도 별 다른 건 없지만, 엎드려 자는 척도 할 줄 알고, 무심한 척도 할 줄 아는 중3이 되었다. "샘은 언제까지 여기 있어요?"란 말을 던져 상처도 줬지만,

"샘, 우리랑 중학교 같이 했네요."말로 감동도 주었다.





"에??"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연거푸 외치곤

똘망똘망 쳐다봤다. 눈물이 가득 고여선.


젠더 감수성이 풍부한 만큼 감정 표현도 거칠던 녀석. 10년도 더 전에, 학원 영어샘이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만 눈물을 터뜨렸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네 눈물을 보고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름 어른스러워진 걸까. 어떻게 해야 멋진 이별이 될까 고민했다. 손편지를 써줄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펜이나 공책 따위를 사줄까. 멋들어진 시를 소개하고 헤어짐을 고할까. 그렇지만 결국 덤덤함을 택했다. 45분. 평소와 다름없이, 하던 대로 수업을 마치고 선언하듯 외쳤다. "공지할 게 하나 있어. 오늘 수업이 마지막이었다." 그 말에 너는 그렇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에??" 하고 눈물을 보인 것이다.


너는 숙제를 잘 해오지 않았다.


숙제 검사를 할 때면 매번 "샘, 사랑해요!" 외쳤다. "싫어." 난 매번 거절이었다. 망아지 같은 남자애들 틈에서 힘겹게 수업을 듣던 네게 큰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 늘 미안했었다. 네가 가지고 다니는 인형에 이름을 붙여주고, 안부를 물었다. 가끔 몰래 훔쳤다가 돌려주기도 하고. 그런 장난들에 네가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빨리 가." 쫓아 보내는데도 선뜻 나가지 못하고 서있던 너. "샘, 사랑해요!" 또 외쳤다. 오늘은 숙제도 없었는데. "그래. 나도." 했더니 기함했다. "마지막인데, 오늘은 왜 받아줘요?!" 못내 서글픈 눈치였다. 괜히 울컥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너희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겠니.

숙제를 해오지 않아도, 제시간에 오지 않아도, 전에 수십 번 가르쳐줬던 내용을 몰라도, 늘 사랑하고 있었어.




화요일과 목요일. 그렇게 2년.

그 시간 동안 함께했던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화가 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즐거웠다. 너희들의 천진난만함과 열린 마음에 감사했다. 가르치러 가서 많은 것을 배워왔다. 너희들은 어리지 않았다. 어리다는 것은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어떤 순간에는 너희가 나보다 훨씬 어른이었다. "친구와 싸웠는데 어떻게 화해해야 될까?" 내가 오히려 묻고 너희가 카톡 메시지를 대신 써주는 순간도 있었으니까. 어떤 순간에는 너희가 어른들보다 현명하고, 착하고, 바른 사람이었다.


내가 가르친 것들이

다만 영탄법, 설의법 같은 것에

멈춰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어른으로 자라면서 문득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대하는 법. 그들에게 권위가 아니라 친근한 진심으로 다가서는 법. 친구가 되는 법. 나이를 벗어나 친구가 되는 법. 내가 마흔 살도 넘게 차이나는 크리스 아저씨에게서 배운 것처럼. 좋았던 선생님이 아니라 좋은 친구로서 기억해주면 좋겠다. 나를 기억해주는 은혜를 베풀어준다면 말이다.





단 한 번도 너희가 용돈이었던 적 없다.

단 한순간도 내 월급이 아니었다.

너희들은 그 순간들을 함께 통과하는 동지들이었다.


너희의 일상, 감정, 가치관이 궁금했다. 너희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것.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것.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 그것들이 중요했다. 그래서 지각을 해도, 방과 후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물어봤고, 화장을 하고 오면, 제대로 된 기초화장법을 알려줬다. 내 이름을 잊어도, 그런 것들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희가 어리든, 여성이든, 학생이든, 계약직이든 간에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들이란 걸. 나도 너희들의 이름을 잊지 않을게.

그 교실에서 컸던 건, 자랐던 건 너희들뿐만이 아니야. 나도 그곳에서 너희와 함께 컸단다.


함께 자라줘서 고마워.

그 순간들을 잊지 않을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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