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무게

엄마와의 3박 4일

by 잰니



며칠 전. 퇴근 후 허겁지겁 지하철에 올라탔다.

엄마는 고속터미널에 있다고 했다. 새로 생긴 파미에스테이션 피자집 앞 벤치에 홀로 앉아 있다고. 회사에 늦었을 때보다 더 날쌔게 몸을 던졌다. 밀려드는 사람들이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아침에 엄마가 씻어준 딸기를 먹고 나왔는데도 반가웠다.

멀리서부터 손 흔드는 엄마를 향해 뛰었다. 배고프다고 성화인 엄마를 위해 슈프림 피자 2조각을 샀다. 벤치에 앉아 오늘 일과를 나누며 우적우적 피자를 베어 먹었다.




동대문 도착. 엄마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으으, 너무 싫다!" 했다.

ddp 건물이었다. 위압감이 느껴져 싫다고. 미래 세계에 당도해버린 것 같단다. "이게 왜 무섭데?" 채근하면서도, 멀지 않은 거리를 우다다 뛰어 벗어났다.


구매한 옷을 등에 둘러업고 엄마 뒤를 따랐다.

아무 생각 없이 블라우스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상인이 "예쁘죠? 세 컬러!" 했다. 예전엔 도매가 물어보면 의심의 눈초리를 쏘아댔는데. 장족의 발전!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새벽에 가까워진 시간. 학교 앞 24시간 맥도널드에 들러 맥너겟 10개를 샀다. 소스도 두 개나 샀다. 아사히 한 캔과 드라이피니시 한 캔을 샀다. 맛있어졌다던데, 사실일까 싶어서.


집에 돌아와 한바탕 패션쇼가 이어지고, "안 팔리면 어쩌지", "그럼 나 줘" 같은 대화를 한 후, 차가운 맥주를 꺼냈다. 나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늘 그러하듯이, 무드 없는 일자 형광등을 끄고 귀요미 꼬마전구를 켰다. 문라이트 배경음악도 틀고.




엄마는 술이 약하다.

아사히 반 병도 채 비우지 못하고 얼굴이 시뻘게져선 "자식만 아니면 안 살고 싶다." 같은 말을 했다. 그렁그렁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으면서.


예전의 어린 나는 이 모습이, 이 말이 참 싫었다.

부담스러웠까. 외면하고 싶었을까. 그렇지만 조금 커버린 나는 엄마의 말이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엄마의 용기가, 그 밝음이 대단해 보였다.




우리는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산다.

내가 엄마를 위해 짊어질 수 있는 건 고작 팔기 위해 산 옷 몇 벌 정도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거지 같은 일상을 조금 더 수월히 버티기 위해 계속해서 털어놓는다. 사실은 막막하다고. 사실은 버겁다고. 술김을 빌려서라도 말이다.


엄마가 떠난 집은 항상 차갑다.

좁아터진 원룸인데도 넓고, 술 취한 새내기들 비명으로 떠들썩한데도 조용하고,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찼는데도 초라하다. 오늘 야근하고 건조한 집으로 돌아와 딸기를 씻어 먹었다.

어쩐지 내가 씻어 먹은 딸기는 달지 않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판 부장님과 엔딩 크레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