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부장님과 엔딩 크레딧

첫 설렘으로 기억하게 될.

by 잰니

벚꽃이 피어날 즈음, 양재천을 따라 팬파이프 소리가 울렸다.

점심으로 가짜 충무김밥과 떡볶이를 먹은 후였다. ‘판 부장님’(요정 ‘판’이랑 똑같이 생겨 혼자 붙인 애칭이다.)은 지인 결혼식에서 공연을 한다며 팬파이프를 연습했다. 산책 나온 주민들이 연주를 따라 흥얼거렸다.


“조연출 뒤에 정규직, 비정규직 괄호 달고 올라가냐? 다 똑같이 후배얌마.”

어느 날엔가 저녁 먹자며 다른 직원들과 불러냈을 때, 판 부장님이 말했다. 소주잔은 이미 삼겹살 기름으로 미끄러웠다. “시간 나면 촬영 때 와서 봐. PD가 어떻게 현장을 휘어잡는지.” 나도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일요일. 3주째 토요일 없이 근무했지만, 상관없었다.

판 부장님의 작업 방식이 궁금했다. “AD!” 정신없는 와중에 판 부장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카메라 뒤, 본인 뒤에 세워두고 일일이 가르쳤다. “어때? 카메라를 이렇게 잡으면 느낌이 다르잖아. 피디는 이런 것도 디렉션할 줄 알아야 돼.” 촬영은 저녁 늦게까지 이뤄졌다.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마음껏 시켜." 촬영 도와줘서 고맙다며 판 부장님이 밥을 사주셨다. 허름한 분식집. 메뉴 하나에 5천 원을 넘기지 않지만, 어묵, 단무지 등 기본 반찬은 산처럼 쌓아주는 곳이었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메뉴들을 가리키며 "저거 다 먹어보는 게 내 소원이야." 하셨다. 3일째 아들내미 퓨마 후드티 입고 출근했으면서. 그렇게 가짜 충무김밥과 떡볶이를 먹었다.




딱히 그런 로망은 없었다.

엔딩 크레딧 아무도 안 보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크레딧에 이름 올라갔어요.” 판 부장님 조연출 오빠가 말해줘 찾아봤다. 내가 촬영 중간중간에 찍었던 사진들이 나오고, 마지막에 익숙한 이름 석 자가 떴다. 인터넷용이라 화질은 깨져도 내 눈엔 선명해 보였다. 아니,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었다.


조금은 거센 빗방울에 벚꽃이 떨어진 오늘.

내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 사이트가 열렸다. 1화가 업로드되었다. 모니터링부터 기획 회의, 섭외 과정 모두 떠올랐다. 자꾸 헛웃음이 났다. 공허한 헛웃음 말고. 알 수 없는 기쁨, 성취감으로 꽉 찬 웃음. 누군가 눈여겨보지 않는다 해도 오늘만큼은 상관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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