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형 댄서, '낙'을 되찾다
지난 주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취미 어플 중, 원데이 클래스가 잘 되어 있는 어플 하나를 처음 이용했다.
여러 어플들을 다운로드하여 둘러봤지만,
엠비티아이 성격유형상 새로운 사람들이 속한 군집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건 한번 등록하기도 어렵지만, 당일이 되면 '날씨가 좋지 않아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일이 너무 많아서' 등등. 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핑계를 대고 빼먹을 게 뻔했다.
일대일 약속에는 핑계가 통하지 않았다.
부담스러움도 줄고, 레슨비로 구매한 의무감도 생기니까. 그런 점에서 원데이 클래스는 괜찮을 법했다.
홈트를 그만둔 지 어언 6개월.. 운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낙이 필요했다. 일주일을 버텨낼 원동력. 일 외에도 향상하려고 노력하는 것.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지인의 소개로 한 사람을 만났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낙의 필요성'을 남겼다.
그의 낙은 '테니스'였다. 그는 매주 토요일마다 테니스를 쳤다.
시간이 나면 테니스 유튜브를 시청했고, 혼자 연습할 수 있는 리턴볼을 알아봤다.
단순히 타임 킬링용이나 운동 목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칠 수 있지?' 고민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아, 빨리 토요일 되면 좋겠다. 일요일도 추가할까?"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음악방송 차례를 기다리는 팬처럼 설레어했다.
그는 하는 운동은 테니스만이 아니었기에, 진천인(이제는 태릉이 아니라며?)이냐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일이 아닌 무언가에 나의 정체성 일부를 의탁하고,
시간을 보내고, 결과도 좇지만 과정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내가 먼저 라켓을 내려놓지 않는 한은 변심하지도 않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를 마구 집어넣지도 않는
그의 '낙'이라는 게 무척 부러웠다.
나의 낙은 뭐지?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낙은 아니었다.
언제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어 발을 동동 굴리게 되지 않는걸.
글은 그저 내게 습관이고, 쓰고자 해서 쓰는 무엇이지, 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을 주진 않는다.
사진도 마찬가지. 꿈에서도 멋진 노을을 보면 휴대폰을 들 만큼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만
그 역시 어떤 일상에 가깝다.
출사 나간 적도 없다. 그저 일상에서 보름달이 뜨면 찍고,
노을이 예쁘면 찍고, 어떤 인테리어 소품이 동물의 얼굴을 닮으면 우습다고 찍는 게 전부.
한때는 요리가 낙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특히 비건 지향을 하면서, 새로운 식재료의 맛을 알게 되고, 진부하지 않은 조합을 찾아내는 게 즐거웠다.
정갈하게 재료를 손질하다 보면 잡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활동들엔 나밖에 없다. 글 쓰기, 사진 찍기, 요리하기.. 전부 혼자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은 낙이 아니고, 나의 평안을 채우는 재료다.
놀랍게도 나의 낙엔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어떤 계시였던 걸까?
나의 낙을 찾던 와중,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인기로 'hey mama' 열풍이 불었다.
재주 좀 있다는 사람들은 SNS에 영상을 찍어 올렸다.
여성들이 단체로 나와 유교사회의 미덕 '겸손'은 제사상에나 차리고,
'내가 제일 잘 나간다'며 으르렁대는 모습은 '언프리티 랩스타' 시절부터 내게 끓어오름을 선사해주었다.
'이걸로 우리나라 사람들 춤 좀 추겠네.'
흘려 생각했지만 그게 나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두 번째 계시. 좋아하는 연예인이 컴백했다.
이게 무슨 계시까지나 되냐 싶겠지만, 새로 돌아온 내 가수의 음악은 너무나 황홀했고,
그의 춤사위를 아주 개미 눈곱만큼이라도 따라 하고 싶은 열망이 컸다.
야근하고 돌아가는 길,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 노래를 쩌렁쩌렁 듣고 있자면,
하나둘하나둘 '보폭이 넓은 것뿐이지 춤을 추는 건 아니란다' 정도로 걸을 만큼 흥이 났다.
노트북이 들어있는 가방일랑 던져버리고 어둠 속에 숨어 춤을 추고 싶었다.
아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춤을 배워야겠다. 춤을 춰야겠다.
다시.
그렇게 야밤 중에 퇴근하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K POP 댄스를 결제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나는 다시 춤을 추러 갔다.
"혹시 춤을 배우신 적 있거나 관련 활동을 하셨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레슨 곡과 예약 확정일을 정하던 중, 선생님께서 물었다.
나는 기다린 것처럼 답했다.
"중고등학생 때 댄스동아리를 했었고, 성인 되어서도 몇 번 학원에 다녔습니다."
댄스 동아리라곤 했지만, 학교 정식 동아리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다섯 명의 크루를 만들어 그때그때 추고 싶은 곡들을 마스터했고,
축제 공연에 올리는 정도.
그렇지만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그 시절.
교실 한편에 책상을 밀어 넣고 친구들과 춤 연습을 하는 게 내 낙이었고,
그 낙이 그 시절 내 전부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어떤 이유에서건 시시때때로 춤을 췄고
(여성의 날 마임을 한다거나 이별의 후폭풍을 어반 댄스로 견뎌낸다거나 등의...)
꾸준히 하진 않았어도 춤을 다시 찾곤 했다.
새로 찾을 '낙'으로서 춤은 역시 그럴듯해 보였다.
"어서 오세요!"
해장국 집과 미용실 사이. 건물 옆 철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자 연습실이 나타났다.
이런 곳에 연습실이 있을 줄이야.
똑똑. 이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오겠지. 했는데 웬걸. 굵은 남성 목소리였다.
그분은 체온을 측정해주고, 손소독제를 주시며 실내용 운동화를 갖고 왔냐고 물었다.
나는 내심, 스태프분이신가 보다, 내 선생님은 곧 오시겠지? 싶었으나
웬걸, "오늘 BAD LOVE 맞으시죠?" 내가 신청한 곡명이 등장하고 말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다고 답하자 선생님은 "몸부터 풀게요!"라고 말하셨다.
그렇지만 몸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곡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동작을 생략하거나 쉽게 수정해도 허우적대기 바빴다.
불현듯 기억났다. 내가 춤을 오래 추지 못한 이유.
나는 노력형 댄서였다.
스스로 감히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분야도 많지 않은데. 신기하게 이건 된다.(어쩔댄스?)
춤을 소위 '따지도' 못하고,
누가 천천히 가르쳐줘도 따라잡으려면 굉장히 오래 걸리지만
연습을 정말 많이 해서 결국 추고 마는. 그런 노력형 댄서.
그렇기에 소그룹으로 레슨을 받으면 속도가 너무 느리고,
일상에 치여 개인 연습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결국 결과는 스트레스.
더 잘하기 위해 시간을 내기보다는 그냥 춤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노력을 포기하니 '댄서' 역시 내 삶에 지워진 단어가 되었다.
"이제 혼자 한번 춰볼게요."
어느 정도 진도를 마치고, 선생님이 음악을 틀어줬다.
함께 연습하다 혼자 음악에 맞춰 춤을 춰야 했다.
곁눈질로 선생님 동작을 보고 따라 하던 것을 멈추고 오롯이 내 동작에만 집중했다.
나우 아 노. 안 끝나.
(타닷) 돈 닛 (하나둘) 댓. (셋) 도망쳐.
(하나둘 셋) 더 멀리. 잇츠 밷 럽.
다 지긋지긋 해. (타탁) (툭) 이딴 밷 러업. (핫둘셋)
돈 닛 (하나둘) 댓. (셋) 카인더브 럽. 포 럽.
내 안에 너 없게. (타타탁)
어 럽 쏘 밷 (하나둘)
대박!
하나도 안 놓쳤다.
배운 동작 그대로 췄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이 쾌감! 그래, 이 맛에 한번 빠지면
그다음은 단체로 딱딱 동작이 맞는 것에 더 큰 희열을 느끼게 되지.
아주 오랫동안 잃었던, 익숙한 감각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워두면 나중에 조금만 다시 배우면 금방 친다는 전설처럼.
감을 찾은 것 같다는 확신!
역시 남들 눈 신경 쓰지 말고 나 자체에 집중해야 된다는 소소한 교훈!
정말 잘했다는 선생님 칭찬에 '아니에요'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신명 났는데...
문제는 체력.
10대, 20대와 같지 않은 이 말도 안 되는 체력.
시간이 1시간 반을 향해 달려가자 무릎이 빠질 것 같았다.
오른쪽 어깨와 팔이 아파오는데 이건 뭐 백신 접종 때보다 아팠다.
체력이 안 되니까 집중력도 떨어졌다.
거의 마지막은 몸부림에 가까웠지만 어떻게 결국 수업을 마쳤다. 슬슬 인사드리고 가려는데
선생님이 꽤나 쑥스러운 듯, 마치 고백을 앞둔 사람처럼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음.. 보통 제가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제가 여기서 직장인 댄스동아리를 운영해요.
혹시 생각 있으시면 같이 해보실래요?"
내친김에 영상도 보여주셨는데, 익숙한 감성이 느껴졌다.
잘은 못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시간 내서 동작을 맞추는 데 희열을 느껴
매일 지하 연습실로 찾아오는 사람들.
마치 중고등학교 때 나와 내 친구들처럼 보였다.
"네! 할게요! 할래요! 저도 끼워주세요."
선생님은 생각보다 더 적극적인 내 태도에 놀란 것처럼 보였지만,
반가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11월에 봬요."
11월엔 이 동아리에서 내 삶의 낙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을 붙잡고 귀가한 나는
오후 5시에 기절하듯 잠들곤 다음날 오후 1시에야 깨어났다.
정말, 이 말도 안 되는 체력...
체력부터 되찾아야 노력형 댄서 타이틀도 찾을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