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의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의사의 질문에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열여섯 살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를 토닥토닥 달래주고 싶었다. 20년이나 지났는데. 저 멀리 까마득한 무의식의 공간에는 열여섯 살의 내가 웅크리고 있었나 보다.
음식이 잘 소화되어야 배탈이 나지 않는 것처럼 감정도 제대로 흘려보내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해서 마음의 병이 눈덩이처럼 커져 버렸다. 그렇게 신경안정제와 의사의 도움을 받은 지 1년이 넘었고, 내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쌓여가고 있다.
태풍이 휘몰아치는데 배에 닻이 없다면,
배는 휩쓸려가겠죠.
그 닻처럼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사의 조언을 곱씹으며 병원을 나섰다.
머릿속을 가득 메운 수많은 생각들이, 그 무게감이 온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기분은 좀처럼 적응이 안된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향해 걸어가면서,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한참 동안 ‘닻’을 생각했다.
어둡고 예민했던 열여섯의 나와 어지러운 마음을 안고 사는 지금의 나는 많이 닮았다.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모습도.
그간의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복잡 미묘한 감정이 연결되어 있음을 의사가 건넨 질문에서 깨달았다.
뜻밖의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그날의 문장들은 모두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인생이 남긴 쓰레기 더미는 자꾸 쌓여 간다.
우리는 그 안에서 특정한 경험들만을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버린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경험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가 버린 달걀 껍데기, 시금치 이파리, 원두커피 찌꺼기 그리고 낡은 마음의 힘줄들이 삭아 뜨거운 열량을 가진 비옥한 토양으로 변한다.
이 비옥한 토양이 우리의 시와 이야기를 꽃피워 주는 자원이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중에서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가끔은 방향을 잃고 헤맨다. 나는 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건지, 그 이유조차 희미해지는 날도 많다.
이 책에서 만난 문장들은 그런 내게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마음이 가는 대로 써도 괜찮다고.
낡아버린 마음을 글로 풀어내던 열여섯의 나와 지금서른여섯의 내가 닮아 있는 것도, 비옥한 토양을 가진 나만의 정원에 꽃을 피우기 위함임을.
아이가 잠든 조용한 밤.
나는 감정의 바다에 닻을 내린다. 나를 지탱해주는, ‘글’이라는 닻.
글을 쓰며 마음 깊은 곳에 닻을 내리면, 하루 종일 부유하던 감정의 조각들이 한데 모여 밤을 지새우다 잠이 든다.
그런 날의 잠은 달밤의 바다처럼 고요하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