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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Dec 01. 2020

덕분에 기간제교사 탈출성공(2)

덕분에 꿈에서 깨어난 걸까요?

가장 고통스럽게, 가장 치욕적으로, 가장 잔인하게 복수해주고 싶다. 잘난 그녀가 더 이상 얼굴 똑바로 들고 학교 다닐 수 없도록 철저하고 조용하게 준비해야 한다. 내가 그녀를 고발한다면 같은 보건교사를 저격했다는 이유로 내부고발자라는 딱지와 함께 영영 기간제 자리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녀를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보건교사로 영영 일할 수 없게 되어도 괜찮다.  


복수를 굳게 다짐하자 조금씩 잠이 오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 구해지지 않은 새로운 학교를 찾는 것보다는 그녀를 가장 처참하게 고발할 경로와 사람들을 물색하고 자료를 모은다. 내게 준 고통만큼 너의 딸도 계약직이 되어 너 같은 직장동료를 만나 처참히 무시당하게 될 거라는 저주를 되뇌고 되뇐다.  




하지만 복수 후에 나에게는 어떤 것이 주어지지?  통쾌함 이외에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설령 그녀를 깔아뭉개고 얼굴을 못 들게 하고 다닌다고 해서 나에게 영영 없어지지 않은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인가?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은 그녀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내게 했던 것보다 나는 훨씬 더 힘들고 아파하고 있다. 내가 스스로 그녀의 바라는 바를  더 충족시켜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일은 복수가 아니라 함부로 흔들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사라는 신분을 벗어나거나, 기간제라는 신분을 벗어나야 반복되는 그녀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그녀가 가장 바라는 모습일 테니, 보란 듯이 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분함으로 벌벌 떨게 해 주리라. 


그러나 힘없고 나약하고 나태한 내가 복수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예 그녀와 엮이지 않은 신분이 되는 것, 바로 교사라는 신분을 벗어나는 것도 생각해보았으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기간제 교사하기 전 문화센터 강사, 유치원 영어강사 등 몇 개의 직업을 가져봤지만 나와 가장 맞는 것은 보건교사였고 또 전공이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래!  기간제 신분을 벗어나자! 



그때부터 오로지 복수심 하나로 무섭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이 40이 넘어 공부한다는 것이, 게다가 일하면서 임용고시를 공부한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에 가깝다. 웬만한 의지로는 힘든 일이다. 퇴근 후 지쳐 쓰러져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은 카톡 프로필의 그녀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네가 그럼 그렇지' 하는 듯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 죽어도 도서관에서 죽자는 의지가 솟아오른다. 

보란 듯이 합격해서 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그 값싼 자존심이 분함으로 벌벌 떨게 해 주리라.  오직 합격으로 너에게 복수하리라!  네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매일 다짐하고 다짐했다.




일하면서 공부했던 해에는 1차는 운 좋게 붙었지만 최종에서 탈락했고, 그다음 해에 아예 직장을 때려치우고 올인해서 최종까지 합격했다. 무려 44살에 임용고시를 합격하게 해 준 것은 그녀에 대한 복수심이다. 보란 듯이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든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후련함. 행복함. 통쾌함. 해방감 모든 감정들이 소용돌이처럼 몰려왔다.


 최종 합격 소식을 접한 바로 다음 날 그녀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합격을 축하한다며, 자기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거 잘 알고 있다며, 미안하다는 사과의 문자였다. 내가 너 때문에 힘들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으면서 합격한 이후에 사과를 한 이유는 무엇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이제는 힘들지 않으니 잊으시라고 답변을 보냈다. 구체적으로 네가 나를 잘근잘근 잘 밟아준 덕분에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너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견뎠다는 얘기 따위는 구차하게 하지 않았다.  내가 이겼으니 된 거다.  이제 나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으니 더 이상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할까. 


나는 여전히 그녀를 싫어한다.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예전의 영향력은 없지만 아직도 끊임없이 본인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지기도 한다. 


귀인님! 

하마터면 당신의 손아귀에서 계속 놀아날 뻔했네요.  3년 동안  잘근잘근 잘 밟아주시고  분노와 오기를 일깨워  주신 덕분에 지금은 일자리 걱정은 없어요.  우리 남편도, 아들도, 엄마도 못해낸 일을 해주셔서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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