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귀인이 되셨습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현재의 내 삶에 가장 강력한 변화를 불러일으킨 동기가 되어주었다. 내 삶의 하찮음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내가 가진 직업의 안정성은 그녀의 손 안에서 철저히 무시당해 계약직이라도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거 라던 나의 자신감을 철없는 망상으로 일 깨워 주던 그녀. 돌이켜 보면 그녀는 나에게 귀인이다.
귀하디 귀한 ‘귀인’이라는 단어를 그녀에게 망설임 없이 쓸 수 있는 것은 게으르고 나약한 나의 정신을 완전히 질근질근 짓밟아 결국 잡초처럼 혼자서 삶을 개척하게 해 줬으므로, 분명히 귀인이다.
10년 전 우연히 집 앞 초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일하게 되며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했다. 집 밖을 벗어나 나의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했다. 물론 기간제 교사라는 신분이었지만, 이름표에 기간제 교사라고 써붙여 있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나 동료 교사들이 기간제라고 나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 하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기쁘게 일하면 기간제라도 행복했다. 정규직에 대한 갈망, 더 솔직하게는 다른 교사들과 똑같은 신분으로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에 어설프게 임용고시를 몇 번 도전했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하는 조금은 루저 같은 삶이었지만 그나마도 교사라는 타이틀과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매번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녀가 내게 태클을 걸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 분명히 기간제 신분이었을 것이다.
기간제 교사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2월이다. 신규교사의 발령이나, 휴직자의 복직에 의해 나의 일자리가 결정되기 때문에 졸지에 백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요즘은 점점 학생수가 줄어들고 있고, 신규교사 채용규모도 늘어나서 빠른 속도로 기간제 일자리는 없어지고 있다. 미발 령교에서 근무할 때는 새해에는 나 대신 신규교사 발령을 요청할까 봐 관리자의 눈치를 봐야 하며, 복직 자리에 있을 때는 혹시라도 정규교사가 일 년 더 쉬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하며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교육청 구인 구직란을 뒤져야 한다. 일 년 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상기하고 싶지 않은 기간제 신분을 오롯이 바라봐야 하는 2월이 나에겐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이 시기만 되면 내게 전화를 한다. 지역보건교사회 임원이라는 타이틀로 이제는 그 학교에서 더 버티지 말라는 압박을 가한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는 학교를 옮기라거나, 자신에게 굽신굽신 하라거나 라는 류의 직접적인 말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서 매년 신규 요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신규들이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난다며, 관리자에게 신규를 받으라고 얘기하라는 발언들을 늘어놓는다. 윤선생 일 잘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신규를 계속 안 받으면 보건교사 전체 채용규모가 줄어든다며 그건 미래를 봤을 때 우리에게 득이 될 게 없다며 원론적인 이야기들로 나를 흔들기 시작한다. 벌써 3년째다.
그래 잘 알고 있다. 순리대로 큰 학교부터 신규가 꽂혀야 하겠지. 그러나 당장의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계약직에게 보건교사 전체 채용규모까지 신경 쓰라는 주문은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닌가? 신규를 받으면 나는? 내가 새로이 계약할 수 있는 곳을 구해 줄 껀가? 왜 내가 그런 얘기들을 내 발로 관리자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지?
그녀가 단지 보건교사 전체적인 채용 규모만을 걱정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매년 나에게 전화를 했었던 것이었다면 그녀는 나의 인생을 바꿔놓는 귀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 그녀는 기간제 교사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어 윤 샘. 얘기 많이 들었어. 나랑 친한 샘 하고 동학년 이더라고. 그렇게 친절하고 일을 잘한다며? 아주 평판이 너무 좋아 호호호호“
처음 보는 내게 친근하게 말을 놓으며 칭찬을 늘어놓던 그녀였다. 그녀 주변에는 유독 기간제 교사가 많이 따랐다.
”선생님들 잠깐 이리로 좀 와봐. 좋은 거 보여줄게 “
뭐예요 뭐예요? 영향력 있고 발이 넓은 그녀와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으면 다음 일자리에 보탬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따라간 곳에는 그녀의 차가 떡하니 서있었고, 호기롭게 트렁크를 열었을 땐 아직 처분되지 않은 꿀 상자가 잔뜩 놓여있었다.
”잘 아는 분이 파시는 건데, 꿀이 너무 좋아. 꼭 필요한 사람만 사가. 돈은 내 계좌로 보내면 되고. 호호호 “
시중가보다 상당히 비쌌지만 다들 너도 나도 사귈래, 큰돈 드는 건 아니니까 나도 질세라 얼른 집어 들었다.
그 후로도 그녀는 주로 기간제 교사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일자리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친한 동료 보건교사도 학교를 옮길 때 그녀를 통해 자리를 구했으며 고마움의 표시로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했다. 김치를 담가주는 기간제도 있었고,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주말이나 퇴근 후에 불러서 수족처럼 부리는 기간제도 있었다. 꿀을 구입 한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일자리를 부탁할 일이 전혀 없었기에, 또 영향력을 수시로 과시하는 그녀가 부담스러웠기에 그녀 주변에는 어슬렁거리지도 않았고,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그 때문이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2월에 받게 되는 그녀의 전화는 조금씩 나를 자괴감에 빠져들게 했다. 작년에는 나에게만 전화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2년 째에는 학교 관리자에게도 보건교사회 임원이라는 타이틀로 직접 전화를 해서 지금의 기간제와 재계약을 해서는 안 되며 큰 학교니 신규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며 민원성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겪어봐서 잘 알고 있던 관리자였기 때문에 그녀의 말에 휘둘림 없이 나와 다시 재계약을 했으며, 다른 학교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날 선 말로 전화를 끊었다.
윤 선생 혹시 뒤에 누가 있냐며, 왜 그 학교에서는 윤선생 하고만 일하고 싶어 하냐고, 어떻게 생각하냐며 다시 내게 교양 있는 말들을 퍼부어 대던 그녀. 물론 내 뒤엔 나밖에 없으며 단지 학생수가 2천 명에 육박하는 거대학교에서 신규교사가 와서 겪게 될 혼란 때문에 업무에 익숙한 나와 재계약을 하고 싶어 하는 관리자들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옮겨야 했던 해. 그녀는 관리자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교육청 인사담당 장학사에게 민원을 제기했다. 그때 그녀는 더 이상 보건교사회 임원 타이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총대를 메고 나선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콕 집어 그 학교에서 반드시 신규를 받게 하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우리 학교 관리자도 나름 힘을 써보겠다며 교육청에 학교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매해 반복되는 그녀의 민원으로 인해 결국 나는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기간제로 일하는 것이 죄는 아닐 텐데, 나의 일자리를 무기 삼아 매년 나를 흔들어 대는 그녀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재계약을 막은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른 학교의 기간제 자리를 어렵게 구해 이력서를 냈다는 나의 소식을 듣고는, 그녀를 따르는 무리의 기간제 교사도 나와 같은 학교에 이력서를 쓰도록 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내가 옮기려고 하는 학교의 관리자에게 인사청탁을 일삼기까지 했다.
사람과 맞서는 일이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에 부당함에 맞서기보다는 피하는 쪽을 택해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그녀를 향한 나의 증오가 온몸을 휘감고 있다. 그해 2월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인사청탁으로 고발하기 위해 모든 증거를 다 모으기 시작했다. 나에게 전화할 땐 무조건 녹취를 했으며, 주변에서 듣게 된 그녀의 인사청탁, 그 대가로 받아 드시는 선물들을 모두 적어놓았다. 나에게 주었던 고통만큼 너 또한 고통 속에서 숨도 못 쉬게 하고 싶다는 복수심이 내 온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미움과 분노로 그녀를 밤낮으로 증오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