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5도! 이불 밖은 위험하다더니

괜히 쫄았네

by 정은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남편과 나의 새해 첫날 계획은 무리하지 말자였다.

영하 15도. 이름만 들어도 피부가 아려오는 강추위 예보 앞에 우리 부부는 일찌감치 몸을 사리는 쪽을 택했다.

"내일은 느긋하게 푹 자고 일어나서 뜨끈하게 떡국 끓여 먹자. 오후에 좀 추위가 풀리면

파주 스타디움 비닐하우스 트랙이나 살살 뛰러 가자고."

새해 첫날부터 무리하지 말자는, 합리적이고도 안락한 다짐을 안고

따뜻한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멍멍이를 끌어안고 먼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먼저 잠들었던 나를 남편이 조심스레 흔들어 깨웠다.

"정은! 러닝크루 공지를 지금 봤는데 내일 새벽에 마포대교에서 일출 보고 여의도 공원 뛴대. 우리도 갈까?"

잠결에 들려온 그 말에 사실 처음 든 생각은 '귀찮음'이었다.

"아침에 일단 깨워나 봐..."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하고 다시 잠에 빠졌지만, 새벽녘 나를 깨우는 남편의 손길에 결국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귀찮았는데, '새해 첫 해돋이를 보며 달리는 기분은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마법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내복을 껴입고, 두꺼운 타이즈와 바람막이, 장갑과 넥워머까지.

영하 15도의 공기에 맞설 무장을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여의도로 향하는 강변북로 위, 저 멀리서 서서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어둠이 걷히며 하늘이 붉고 푸른빛으로 물드는 그 찰나의 순간,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나오길 잘했다.' 침대 속에 있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부지런한 자들에게만 허락된 2026년의 첫 번째 선물이었다.






마포대교 인근에 도착하니 이미 수많은 사람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비장함 대신 설렘이 가득했다.

일출을 배경으로 남편과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순간, 우리 마음속의 무언가도 함께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놀라운 건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을 때였다.

영하 15도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공원은 러너들로 가득했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각자의 속도로 지면을 차고 나가는 사람들.

그 무리에 섞여 발을 내디디니, 혼자라면 절대 내지 못했을 에너지가 샘솟았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선명하게 느꼈다.

“아, 죽을 것 같은데 너무 좋아!”라는 모순적인 말이 절로 나왔다.

땀이 식기 전에 크루들과 달려간 해장국집.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크으-’ 소리가 절로 나는 걸 보니,

우리도 이제 확실히 ‘러닝 아저씨, 아주머니’ 감성에 합류했나 보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어진 2차전은 수다였다.

오늘 아침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실은 다들 이불 속에서 얼마나 갈등했는지 고백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떡국 대신 선택한 이 소란스러운 아침이 2026년의 가장 잘한 선택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얼굴은 푸석하고 머리는 엉망이었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했다.

만약 남편이 나를 깨우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배부른 상태로 늘어져 오늘 하루가 가는 걸 아쉬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2026년, 올 한 해 나의 삶도 오늘 아침 여의도 공원 같기를 바란다.


멈춰 서서 고민하기보다 일단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가는 삶.
그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일출과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는 그런 역동적인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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