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인주의까지 녹이다.
겨울, 그것도 영하 10도의 공기는 달리기의 시작을 망설여지게 하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파주에는 운동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겨울 운동을 위해 트랙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놨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곤
부지런히 파주스타디움으로 향했다.
한기를 뚫고 파주 스타디움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기이하고도 따뜻했다.
거대한 정규 트랙 위를 덮은 투명한 비닐하우스.
그 안은 바깥세상의 계절을 잊은 채 홀로 따뜻한 봄을 품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안쪽은 놀라울 정도로 훈훈했다.
걷기 트랙에는 어르신들이 열심히 파워 워킹을 하고 계셨고,
아장아장 걷는 아가들도 아빠 엄마를 따라서 하하 호호 웃으며 걷고 있었다.
달리기 트랙에는 반바지 반팔차림으로 달리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들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이 비닐 천장에 맺힌 이슬과 닮아 있었다.
나 역시 두꺼운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트랙 위에 섰다.
400m 정규 트랙은 본래 가혹한 곳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정직함은 때로 달리기를 지치게 한다.
하지만 비닐하우스 트랙은 달랐다.
투명한 비닐 너머로 세상의 풍경이 불투명하게 뭉개지자, 거리 감각이 묘하게 흐릿해졌다.
지금 내가 곡선 구간을 도는지, 직선 구간의 끝에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그 모호함이 오히려 지루함을 지워주었다.
풍경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나의 거친 숨소리와 바닥을 차는 운동화의 리듬뿐이었다.
그러다 몸에 열이 과하게 차오를 때쯤, 슬쩍 비닐 밖으로 나가 영하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트랙을 달렸는데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몸속 구석구석으로 퍼질 때의 그 소름 돋는 상쾌함이란.
마치 한겨울 추운 날 엄청나게 뜨거운 노천탕에서 얼굴만 내놓고 있을 때의 기분 좋은 온도 차였다.
기안 84가 프랑스 메독 마라톤의 피니쉬 근방에서 나눠주는 레몬아이스크림을 먹고
천사를 만난 것 같다고 표현했는데, 아마도 그것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것 같다.
토요일, 남편과 둘이서 예열한 트랙을
일요일에는 서울 당산에서 원정 온 우리 크루 멤버들과 함께 채웠다.
로드 러닝을 할 때 우리 크루의 고수들은 늘 저 멀리 앞서가는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뒷모습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평소와 달리,
트랙 위에서 드디어 그들의 질주를 제대로 '직관'할 수 있었다.
불필요한 움직임 하나 없이 지면을 가볍게 스치며 나가는 매끄러운 폼, 리듬감 있게 요동치는 근육의 움직임. 나를 추월해 가는 그들의 폼을 보며 경외감이 들었다.
저렇게 물 흐르듯이 멋지게 뛰는 사람들과 내가 같은 '크루'라는 사실이 새삼 뿌듯해졌다.
그들의 보폭을 흉내 내보고, 그들의 호흡에 내 발걸음을 맞춰도 보았지만
몇 미터 따라가기도 힘든 엄청난 속도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뱁새씨! 황새님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져요!
운동이 끝난 후, 예상치 못한 고비가 찾아왔다.
내 안의 '개인주의자'가 경보를 울린 것이다. 내게 운동이란 '깔끔한 완결'이 있는 행위다.
땀 흘려 뛰고, 가볍게 인사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오롯이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는 것.
하지만 당산까지 가서 밥 먹기엔 너무 동선이 기니 밥은 다음에 함께 먹겠다는 나의 정중한 거절에,
바로 파주에서 밥을 먹고 가자는 제안이 들려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순간 머릿속엔 '귀찮음'이라는 단어가 커다랗게 박혔다.
하지만 먼 길을 와준 동료들에 대한 예의로 귀찮음을 억누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웬걸. 따뜻한 음식이 차려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탁 앞에 앉자,
조금 전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방어막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오늘 달리기가 어땠는지, 비닐하우스 안의 습도가 어땠는지 같은 사소한 이야기부터
왁자지껄 이어지는 대화들은 식당 안의 공기를 달구었다.
남편과 둘이었다면 후딱 해치웠을 한 끼가,
함께이기에 풍성한 '식사'가 되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들어온 이 자리가 생각보다 훨씬 즐겁고 다정했다.
나는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개인주의자다.
하지만 이번 주말, 비닐하우스라는 낯선 공간에서 나는 배운 것이 있다.
때로는 현재 나의 위치가 선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계속 달릴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타인의 열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동력이 자라난다는 것.
무엇보다, '귀찮음'이라는 핑계로 밀어냈던 타인과의 시간이 사실은 내 삶을 더 따뜻하게 데워줄 수도 있다는 사실들 말이다.
이제는 모임을 향한 내 태도를 조금은 바꿔보려 한다.
영하 10도의 한파를 녹여버린 그 비닐하우스처럼,
나도 가끔은 타인의 온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넉넉한 공간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