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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Dec 09. 2020

파란 점 공포증

무심한 파란 점이 무서울 줄은 몰랐습니다. 

뭔가 가슴에 돌덩이가 얹혀 있는 것 같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려 몇 번을 깼는지 모르겠어요.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이 깰까 살짝 일어나 거실로 나왔습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나의 탭이 보이지만 쉽사리, 여느 때처럼 탭을 들지 못하고 있어요. 무서워요. 아니.. 피하고 싶어요.



브런치를 시작한 지 저는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브런치가 딱히 뭐하는 곳인지 잘 몰라요.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장치로 브런치가 딱이라는 추천이 있어서 뭣도 모르고 발을 담갔습니다. 


브런치를 클릭하고, 메인화면을 쓱 둘러보고, 괜찮은 글 있으면 라이킷 한번 누르고, 내 브런치로 돌아와 예전에 썼던 글들을 조금씩 다듬거나, 또는 새롭게 생각나는 일들이 있으면 쓰고, 다듬고, 올리기를 반복했어요. 

길면 3일에 한번, 잦게는 매일 올리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오래간만에 글을 규칙적으로 쓰니 무언가 탄력을 받는 것이 너무 재미있데요.


하지만 탄력을 받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 파란 점 공포증이라는 신종 질환을 안겨주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매일 쓰고, 다듬고, 올리기를 3일 정도 연속하던 그날 바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파란 점.. 무서워요. 






구독자도 우리 남편과, 언니를 포함해서 3명에 지나지 않던 (1명은 순수 구독자 맞아요)  초보 브런치 작가는 

그래도 몇 명이나 내 글을 읽으셨나 매일 확인하며 짬짬이 통계를 눌러봐요. 일종의 의식처럼요.

  평균적으로 제일 많은 조회수가 30명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글을 올린 지 한 시간 만에  

조회수가 1000명이 되었다는 알림이 오네요. 


어? 이상하다? 통계를 눌러 유입경로를 보니 다음이라고 떠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디에 제 글이 있는지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에라 모르겠다 퇴근하고 남편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3천이 돌파했다는 알림이 또 와요.!

찾았어요. 다음의 홈&쿠킹 카테고리에 제 글이 떠있었던 거예요.

  온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남편과 축하주를 하고 기분 좋게 그날은 잤어요.

첫 다음 메인으로 뜬 제 글을 보고 너무 기뻤어요.




다음날 오전까지 제 글이 다음 메인화면에 계속 떠있고 조회수도 5천을 넘어가서 뿌듯하더라고요.

 내용도 보건실 이야기로 나름 아름다운 얘기였으니 라이킷도 기분 좋았고, 댓글도 훈훈했지요. 

어? 그런데 오늘은 천 단위가 아닌 만단 위로 조회수 증가 알림이 와요.

아....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글이 그렇게 재미있나? 아직도 떠있나 하고 다시 다음에 들어갔는데 

어제 메인에 떴던 글은 어느새 사라지고 바로 그전에 올렸던 저의 다른 글이 오늘은 더 크게 메인에 올랐어요. 연달아 이틀씩 이렇게 막 올려주는 인심 후한 곳이 브런치인 거예요?



다음날은 저의 다른 글이 훨씬 크게 메인에 떴어요. 


이야~ 브런치 할만하네. 다음 메인에 내 글이 뜨다니. 가문의 영광이네 영광이야.

 또 동네방네에 자랑 자랑하며 아직 글빨 살아있네 뭐네 하며 얼마나 작가 놀이를 했는지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내심 이 글은 그래도 조금 빨리 내려줬으면 싶었어요. 솔직하긴 하지만 저의 예전에 한심했었던 과거 시절을 조금 희화해서 쓴 거라 창피했거든요. 그래도 과거니까, 또 지금 나랑 비슷한 엄마들도 있을 거니까 용기 내서 올렸는데 그래서 그런지 구독자도 이글 하나로 20명이 늘어나고 조회수는 거의 4만을 찍었더라고요. 오늘까진 오만을 찍었어요.  마냥 기뻐야 하지만... 파란 점 공포증이 이 글 때문에 생겼어요. 





"한심하네요"

헉! 제 글을 다 좋아해 주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한심하다는 소감을 그렇게 정직하게 댓글로 표현해주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딩동! 딩동! 다시 응원하는 글, 옹호하는 글이 달리며 가슴을 쓸었는데 그것도 또 잠시 딩동~딩동~ 제 마음과는 다른 댓글이 저의 가슴과 머리를 후벼 파네요.  


"나 댓글 닫았어. 무서워서 못 보겠어. 댓글 왔다는 파란 점이 떠있는데 클릭을 못하겠어."

브런치를 습관처럼 접속하고, 누군가 라이킷을 누르거나 댓글이 있으면 떠있는 그 무심한 파란 점이 예전엔 그렇게 반갑더니, 이젠 무서워요. 정말로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요.  다음 메인에서는 지워졌는데 어디에 또 떠있는지 찾지도 못하겠는데 계속 조회수가 늘어나는 것도 이제는 너무 부담스러워요.




"너 그럼 글 영영 못써. 사람들이 네가 쓴 글을 다 좋게만 바라봐주길 바랬던 거야?

 유시민도 봐. 글 얼마나 잘 써? 근데 사방에서 글 하나로 공격 많이 받잖아. 

김영하는 안 그래? 네가 좋아하는 신경숙은? 박범신은? 다 똑같아. 

그런 거 무서우면 혼자서 니 컴퓨터에만 글 써야지. 왜 브런치에 올린 거야? 

그런 거 감수하고 여러 사람들 의견 받으려고 올리는 거 아니야? 

댓글이 지적한 거 진짜 중요한 거야. 

그걸로 수위조절도 하고 문체 조절도 좀 하고 그래야 발전하지."


저 같은 초보 브런치 작가를 위로하며 박범신과 신경숙과 김영하 님을 운운해줘서 살짝 기분이 풀렸고(남편이 고수였네요) , 또 남편의 말이 매우 일리가 있었기에 다시 댓글창을 열고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은 글에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대댓글을 정성껏 달고 있으니 

조금 마음이 풀리기도 해요.




씩씩하게 또 매일 글을 올렸는데 어라? 이제는 파란 점이 안 보여요. 이거 왠 안쓰러운 상황인가요.

마치 월드스타였던 비가 한껏 팬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기대하며 깡을 선보였는데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는, 아니 비는 악플이라도 많았는데 저의 글은 완전히 노관심과 안물 안궁의 그런 대략 난감한 상황인 거예요. 


아... 저기 저 파란 점 공포증 이젠 많이 좋아진 거 같은데 파란 점 좀 주셔도 되거든요.  

파란 점 이 많이 생겼던 것이 저 혼내는 게 아니라 그만큼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던 거더라고요. 

맞아요. 엄청 고마운 거였어요.  

그래서 저 다시 긴장 쫙 풀고 글 쓰는 재미 좀 느껴볼라고요. 저랑 같이 쓰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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