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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Dec 07. 2022

친절한 일본 사람 같아요.

칭찬인 걸로 알게요.

친절한 일본 사람 같다는 얘기를 친한 친구들에게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냥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굳이 뒤에 '일본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친절하지만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은,

약간 인위적인,

무언가 몸에 밴 듯한 습관적인 친절함 같다는 그런 뜻일까?




나는 내가 봐도 매우 친절한 편이다.

다른 이에게 늘 미소를 띠는 편이고, 상냥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며, 가능한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럼 그냥 나이스 하거나, 친절한 사람이라고 해줘야지 왜 '친절한 일본 사람'인 거야?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의 친절함에 대해서.

나의 친절함의 본모습은 무엇일까?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표현일까.. 아니면 나의 이미지 유지를 위한 사회적인 친절함인가?

아무래도 나는 후자인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남의 시선, 남들의 평가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며

가능한 좋은 평가에 목숨을 걸고, 입만 어색하게 웃고 있는 약간은 인위적으로 친절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친절한 일본 사람'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를 너무 꿰뚫어 본 것 같아서 사실 뜨끔했었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남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남들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으며, 남들의 안위 또한 크게 관심이 없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그저 나와 내 가족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따뜻한 집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데만 온갖 관심과 정성을 쏟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이기적인) 사람이다.

남들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하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 다가오면 칼같이 끊어내고, 나 또한 어느 선 이상으로는 다가가지도 살갑게 굴지도 않는다.

'우리''팀''함께''라는 단어를 내 가족 이외에 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냥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친절한 일본 사람'이라는 한 인간을 통찰하는 기막힌 별명을 붙였으리라.





기간제 교사 시절에  경기도 외곽 소규모 학교에서 보건교사를 구하고 있어서 이력서를 내려고 고민을 하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학생수도 적고 외곽지역이라 학교도 정겹고 예뻐서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그 예쁜 학교를 칼같이 내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개인주의 아줌마가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함께' 문화가 아름답게 자리 잡은 곳이었던 것이다. 그 학교는 해마다 학교 뒤뜰에 계절마다 농사를 지어 철마다 채소를 나누어 먹으며, 초겨울에는 학교의 큰 행사로 같이 김장을 해서 주변 보육원이나 노인정 등 복지시설에 나누어도 드리고, 급식 때도 그 김치를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기겁을 했다.

개인주의 아줌마인 나에게 일 년 내내 무언가를 '함께'  해서 두루두루 나눈다는 것은 어느 선 이상으로 친해져야 한다는 얘기 같고, 쓸데없이 내 시간을 써야 한다는 소리 같고, 관심도 없는 남들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얘기처럼 들려서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그런 개인주의 아줌마가 오늘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작은 충격을 받았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여느 때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ㆍ

한쪽 벽에 큼직큼직하게 적은 손글씨 안내문이 붙어있었는데, 언뜻 보니 '청소아줌마' '김치'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딱 들어왔다.

'아휴 또 누가 여기저기에 김장거리를 마구 지저분하게 널어놓았부지? 오죽했으면 청소아줌마가 저런 걸 붙여놓느냐고. 진짜 우리 아파트 어뜩하니. 정신 좀 차려야 돼 정말.'

순간 공용공간을 자주 더럽혔던 옆집 할머니가 떠올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청소아줌마' '김치'라는 단어만으로 옆집 할머니를 머릿속으로 신나게 험담을 했다.






15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한숨을 팍 쉬며 다시 그 안내문을 읽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나 같은 개인주의 아줌마는 생각도 못해본

'함께' '나누는' 챙김을 아무도 모르게 그저 행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진짜 친절한 사람  고마운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 준 김치를 나눈 내 이웃도, 그 고마움을 정성스러운 손글씨로 표현해준 청소 여사님도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인생의 스승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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