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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Dec 02. 2022

호구 선생님2

실수.. 그리고 그 후의 선택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담임의 내선번호를 눌렀다.

"네 보건 샘!"

"아.. 선생님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요 샘. 무슨 일 있어요?"

"명석이가 6교시에 보건실에서 쉬고 갔잖아요."

"네 제가 사인해줬어요."

"조금 전에 명석이 나가고 침대를 정리하는데 정액이 있어요.  그것도 많이요. 하.. 저기 그러니까.. 학년부장님 하고 같이 내려오셔서 확인 좀 해주세요. "

"아.. 어쩌면 좋아. 어떡해.. 알겠어요.   부장님 하고 같이 내려갈게요"






2학년 부장과 담임은 침대 한 귀퉁이를 흥건히 적셔놓은 정액을 확인하곤 사진을 찍었다.

"하.. 내가 너무 교사를 오래 했네. 이런 일은 나 진짜 상상도 못 했어요. 어쩌다 우리 학교가 이런 수준이 됐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2학년 부장교사는 허탈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일그러진 표정의 담임은 연신 '으~ 토할 것 같아'를 연발했다. 

"샘 이거 어떻게 해줄까? 앞으로 얘 졸업할 때까지 보건실 출입 금지시킬게요. 하 정말 이거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당장 올라가서 학생 만나고 단도리 할께. 앞으로 절대 보건실 못 내려오고 아프면 친구 시켜서 약 받아가든가 아님 조퇴하던가 그렇게 하라고 할게. 아 정말 내 살다 살다 별 더러운 일을 다 겪네."


당장이라도 올라가 학생을 만나겠다던 부장은 정액이 점점 말라가는데도 오지 않고 있다.  학생에게 확인시키고, 잘못을 고하게 해야 하는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교감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교감에게 보고를 하자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성사안이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남자 교사가 학생과 얘기하는 게 좋겠다며 바로 2학년의 남자 교사를 불러서 학생을 보건실로 데려오게 했다. 

명석이를 데리고 온 남자 교사는 국어교사답게 차분하게 묻기 시작했다. 

"명석아.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보건실에서 명석이가 6교시에 쉬고 갔어. 맞니?"

"네"

"그런데 명석이가 누웠다 간 침대에서 정액이 발견되었어. 혹시 명석이가 보건실에서 쉬면서 무슨 행동을 한 게 있니?"

명석이는 약간은 당황한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아니요! 저는 그냥 자고 간 거밖에 없어요."

"그래. 그런데 오늘 이 침대를 쓴 사람이 명석이 혼자 밖에 없고, 명석이가 누웠다 간 직후에 정액이 바로 발견이 되어서 너에게 물을 수밖에 없구나. 혹시 네가 눕기 전엔 침대에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았니?"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대답을 이어갔다. 

"네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 그런데 명석이가 누운 이후에 발견된 정액이라서 이게 좀 곤란하게 되었어."

"전 가고 간 거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요."

"그래. 그러면 이게 좀 중요한 사안이라서 말이야.  보건실에 보건샘하고 명석이하고 단 둘이 있었던 상황에서 발견된 정액이라 보건 선생님이 좀 충격을 받으셨어.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검사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니?"


"네 하세요."

이번엔 멈칫하는 것도 없이 즉각적으로 검사를 해보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 명석이 뜻이 그렇다면 검사를 좀 해볼게."

"아 그런데요. 혹시 저 정액이 검사를 해서 제 걸로 나오면 어떡해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명석이의 얼굴에 지금은 당황의 빛이 역력하다. 

"어? 명석이는 그냥 자고 간 것 밖에 없는데 정액이 네 것으로 나올 리가 없잖아."

남자 교사와 그 뒤에서 대화를 듣던 나는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로 명석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래도 혹시 제껄로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요. 저는 자고 간 기억밖에 없지만 정액은 제걸로 나온다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남자 교사는 계속되는 명석이의 궤변에 약간 화가 나 보이기도 한다.

"지금 명석이가 하는 말을 선생님은 잘 못 알아듣겠어. 너는 자고 간 적 밖에 없다면 니 정액으로 나올 리가 없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니? 혹시 너는 지금 몽정일 수도 있겠다 라는 얘기를 하는 거니?"

약간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의 명석이가 대답을 이어나간다. 

"네. 그럴 수도 있잖아요. 자다가 나온 게 침대에 묻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일단 검사를 해보고 결과에 따라서 네 생각을 얘기하면 될 것 같은데? "




  아이가 밉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딱 잡아떼고 있는 아이가 밉고 또 밉다. 그리고 무섭다. 18살 남자아이. 나보다 키도 크도 덩치도 큰 아이. 이제 2년 후면 성인이 되는 남자아이를 난 그동안 그저 어린 학생으로만 보고 있었구나.  앞으로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분노와 두려움과 혼란함이 뒤섞여 소리치며 다그치고 싶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사 과정 중에 나의 태도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심호흡으로 감정을 억누른 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명석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자다가 나왔다고 하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일단 선생님은 너와 내가 단둘이 있었던 상황에서 발견된 정액이라 많이 놀라고 무서운 건 사실이야.  그래서 경찰에 의뢰를 좀 해볼게."

명석이는 끝까지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다. 나는 자고 갔을 뿐이며, 정액은 나도 모르겠다. 내 정액으로 나온다면 그것도 난 모르겠다.  잘 때 나온 거니까 난 억울하다. 


  평균 남성은 한 번에 3cc 에서 많게는 5cc가량의 정액을 사정한다. 그 양은 1T 스푼 정도로 명석이의 주장대로 몽정이었다면 명석이의 팬티를 많이 적시고  바지에 조금.. 후하게 보더라도 침대 이불 정도를 살짝 적셨을 것이다. 나는 정액의 형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매트리스 커버와, 매트 패드와, 이불까지 흥건한 정액을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명석이는 이미 시간이 경과해서 말라가고 있는 정액을 지금 보고 있다. 양이 적어 보였겠지. 그래서 억울하다고 우기고 싶었겠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 또한 수많은 실수를 했고 만회하기 위해 잘못을 빌었고, 때로는 지금의 명석이처럼 얼토당토않은 억울함을 호소한 적도 있었다. 그때 내가 했던 되지도 않는 거짓 억울함에 대한 대가를 지금 치르는 것일까? 그때와 똑같이 누가 봐도 뻔한 거짓 억울함을 토로하는 명석이를 보니 여러 감정이 든다.  누구나 나도 모르게, 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충동에 의해 벌어진 일들을 실수라고 한다. 실수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를 어떻게 만회하느냐는 오로지 본인에게 달려있다.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실수 자체를 부정하고 후퇴할 것인가. 실수 이후의 선택이 모여 그 사람을 만든다. 

 명석이가 만약 잘못을 시인했다면 2학년 부장의 말처럼 보건실 출입금지시키는 정도로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명석이는 실수 이후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명석이에 대한 분노와 앞으로의 학생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한 혼란함과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당장 이 시간 이후로도 명석이와 같은 남학생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상처받은 내 영혼에 대한 안쓰러움이 밀려와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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