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의 신나는 러닝 러닝!!
2024. 5. 18.(토) 강릉 경포호에서 열린 TNF100 트레일 러닝 대회에 10k 주자로 참여했다.
새벽 6시 30분에 집을 출발해 강릉에 도착하니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TNF100 대회 기념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나와 남편도 그 티셔츠를 입은 덕에 왠지 트레일러닝 주자들이 강릉을 접수한 것처럼 느껴져서 으쓱했다.
일반적인 여행이 아니라 마라톤 대회 출전을 위해서 여행을 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확실히 여행의 맛이 깊어졌다.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얘기하고, 걷고, 카페 가고 대략 비슷한 여행 루틴으로 짜이는데 마라톤을 테마로 여행을 와보니 준비할 때부터 러닝코스를 검색하고, 러닝 할 때 입을 옷을 챙기고, 러닝전후에 먹을 것들을 계획하는 그 과정자체도 너무 즐거웠다.
강릉에 도착해서 강릉초당순두부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는데 오후에 트레일 러닝을 해야 하니
평상시 좋아하는 짬뽕 순두부보다는 하얀 순두부로 주문해서 맛있게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강릉은 역시 순두부다)
미리 대회장에 도착해서 이곳저곳에서 사진도 찍고 경포호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트레일러너가 산에서 내려와 마구 뛰어가고 있었다.
뛰는 속도가 대충 봐도 4분대 페이스로 내가 전력질주를 해도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거의 날아가고 있었는데, 시간을 보니 12시 4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라 100K 주자들이 도착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고 아침 8시 30분에 선자령에서 출발한 50K 주자가 들어오기에도 너무 이르다 싶은 시간이었다.
산길이 거의 대부분인 50KM를 거의 4시간 만에 들어온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나중에 찾아보니
우리 앞으로 바람처럼 등장한 그 사람이 50K를 1등으로 들어온 일본인 선수 히로키 카이였다. (1등의 레이스를 눈앞에서 보다니 영광 영광 할렐루야다!)
영광스러운 깜짝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도 부지런히 챙겨서 10K에 참여했는데
뛰기 전부터 이미 5월의 강릉은 31도를 찍었고, 오후 3시 30분 출발이라 지면은 계란프라이를 해도 될 정도로 잘 익어있었다. 하지만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다.
다행히 처음 3KM 정도는 숲길이라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남편과 함께 5분대 페이스로 신나게 뛰었다.
그것도 잠시뿐 3KM 이후부터는 뜨겁게 달궈진 로드를 강렬한 태양 아래서 계속 뛰어야 했는데
더위에 유난히 약한 남편이 먼저 퍼지기 시작했고, 나 또한 점점 퍼져서 걷뛰걷뛰로 겨우겨우 산까지 도착했다. 시원한 산속에서는 다시 열심히 뛰었는데 내리막에서 바로 뒤에 오던 여성주자가 나무뿌리에 걸려서
심하게 넘어졌다. 그때부터 살살 모드를 ON 시켜서 잔잔바리 걸음으로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를 속도로
몸을 사리며 레이스를 했다. (기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
"그래 이제부턴 즐기자! 기록이니 뭐니 신경 쓰지 말고 즐기자"
더위에 지칠 대로 지쳐서 페이스는 모두 무너졌기 때문에 즐기자는 마인드로 폰을 꺼내서
서로의 뛰는 모습을 찍어가며, 해변을 뛸 때는 잠시 모래사장에서 점프도 하면서,
응원을 해주는 시민들에게는 힘차게 같이 소리도 지르면서 재미있게 즐겼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 다시 경포호 피니쉬에 도착했다.
피니쉬에서도 남편과 함께 셀프영상을 찍으며 신나게 들어왔는데 기록을 보니 의외로 1시간 17분이었다.
초반에 질주해 준 덕분인지 기록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도착지에서 무료로 주는 시원한 강릉 생맥주도 마시고, 메달을 걸고 기념 촬영도 하고 대회장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맘껏 즐겼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50k 주자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는데 이 더위에 10k도 뛰기가 힘들었는데
50k를 뛰어낸 그들이 영웅처럼 보였고 그들의 도전정신과 지금 느끼고 있을 성취감이 떠올라 울컥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TNF100 50k는 코스가 환상적이어서 트레일러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꼭 참가하고 싶은 꿈의 레이스이고, 매년 아이돌 콘서트 티켓만큼이나 광속으로 마감이 된다고 한다.
다음날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조금 넘어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는데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100k 주자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100k는 운전으로도 먼 거리인데 특히 산속에서의 100k를 뛰어서 오다니 상상도 하기 힘들다.
전날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해서 꼬박 24시간 이상을 걷고 뛰어가며 드디어 피니쉬를 앞둔
그들의 지금 마음은 어떨까? 나는 아마 평생 100k를 뛸 일은 없을 테지만..
그들을 24시간 이상 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다음날 출근은 할 수 있을까?
준비를 어떻게 했을까?
밤에 산길을 어떻게 뛰었지?
무섭지 않았을까?
어떻게 포기를 안 할 수가 있지..?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는 주자,
겨우겨우 뛰어보는 주자,
힘차게 뛰는 주자,
손을 잡고 나란히 뛰는 주자들을 일출과 함께 바라보고 있으니 존경과 부러움이 바탕이 된 온갖 질문들이
떠오르며 나도 10k보다 조금 힘든 코스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쪼끔 아주 쪼끔씩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을에 열릴 태백 트레일러닝 20k 대회에 다리를 질질 끌면서 뛰고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마라톤도 재미있었는데 트레일러닝은 더위만 아니라면 길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몇 배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러닝~~ 너~~ 왜 이렇게 알면 알 수록 매력이 넘치는 거야!! 계속 좋아해 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