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언니와의 만남, 그리고 인도 도착
함께 인도로 떠나게 된 R언니는 저보다 아홉 살 정도 많은 30대 초반의 여성이었어요. 가무잡잡한 피부에 선이 고운 얼굴, 등을 덮는 긴 갈색 머리에 아담한 키. 무용을 전공해서 그런지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의 소유자였지요. 하지만, 여성스러운 외모와 달리 허스키한 낮은 목소리에, 웃을 때도 어딘지 모르게 그늘진 느낌이 있었습니다. 첫 인상 때문이었는지, 나이 차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R언니와의 첫 만남은 어색했어요.
인도에서는 다 같이 모여 명상을 하는 곳을 일컬어 ‘아쉬람’이라고 합니다. 오쇼 라즈니쉬 아쉬람은 인도 서쪽 마하라슈트라 주, ‘뿌나’ 시에 위치해 있어요. 뿌나는 뭄바이 국제공항에서 차로 두 세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지방 소도시입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뭄바이까지 가는 직항이 없었어요. 인천 국제 공항이 완공되기도 전이었죠. 서울 김포 공항에서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까지 대한항공을 타고 간 뒤, 간사이 공항에서 일본 국적기인 ANA 항공으로 갈아 타고 인도 뭄바이 공항까지 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처음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내렸을 때, 거대한 규모의 현대적인 건축물에 압도 당하는 느낌이 들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공항 때문인지 일본에 비해 한국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오사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곱 시간 정도 지나자 인도 뭄바이 공항에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왔어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던 저는 처음 만나는 인도의 전경을 두 눈 가득 담기 위해 창에 바짝 붙어있었죠.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 제 눈 앞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활주로 주변에 신문지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수십 개의 천막들이 옹기 종기 늘어서 있었고, 그곳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신문지 천막 속에서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거나 분주히 움직이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지나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봤던 인도인들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그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현실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뭄바이 공항 입국장 문을 나서자 R언니의 지인이 보낸 택시 운전사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의 뒤를 따라 R언니와 함께 걸어가는 내내 수많은 인도 남자들이 갈색 빛깔 손을 휘저으며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택시?!” “릭샤?!”
번뜩이는 눈빛과 성난 듯한 표정을 한 인도인들의 공격적인 호객 행위에 놀란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놓칠세라 몸을 밀착하고 팔짱을 꼈습니다. 첫 만남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어요. 그렇게 입국장의 혼돈을 헤치고 공항 밖에 주차된 택시까지 가는 십분 남짓한 시간이 참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택시라고 하지만 에어컨도 없는 낡은 SUV 차량이었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우리를 반기며 짐 싣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비행기에서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던 R언니는 어느새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습니다. R언니는 택시를 타고난 뒤 낮은 목소리로 제게 속삭였어요.
“쟤는 왜 여기 있을까? 이 사람들이 우리를 납치하면 어떻게 하지?”
“에이, 언니 친구분이 보낸 택시인데 그럴 리 있겠어요?”
저도 조금 불안했지만, 내색하지 않았죠. 공항을 벗어난 택시가 뭄바이 시내로 들어섰습니다. 도로에는 릭샤와 자동차, 오토바이 등이 한데 뒤엉켜서 이동하고 있었어요. 릭샤는 한 두 명 정도가 뒷자리에 탈 수 있는 이동 수단인데요, 사람이 직접 몸으로 끌기도 하고 자전거를 달아서 움직이기도 합니다. 작은 모터를 달아서 소형 자동차처럼 운전하기도 하죠. 그곳 도로에는 세 가지 종류의 릭샤가 모두 있었습니다. 도로 한 복판에는 회색 코끼리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가는 것이 보였어요. 코끼리뿐만 아니었습니다. 몇 마리의 소가 도로를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죠. 거리 곳곳에는 바닥에 앉아 있거나 드러누운 거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운전기사는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조수석에 앉은 남자와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며 운전하고 있었어요. 에어컨이 없어서 창문을 활짝 열어둔 터라 도시의 매연과 먼지가 차 안 가득 들어왔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도로 위 풍경이 신기해서 열심히 창 밖을 구경하고 있는데 R언니가 저를 쿡쿡 찌르더군요.
“쟤가 왜 조수석에 앉아 있는지 이제야 알겠다. 이 차에는 깜빡이와 사이드 미러가 없어. 봐봐.”
R언니는 손가락으로 조수석에 앉은 남자를 가리켰어요. 그 남자는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분주하게 도로 상황을 살피며 알 수 없는 말로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회전할 때마다 창 밖으로 손을 뻗어 흔들었어요. 아마도 그렇게 뒤에 오는 다른 차 운전자들에게 신호를 해주고 있었던 것 같아요. 좌회전할 때는 운전기사가 창 밖으로 손을 뻗어 흔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재미있게 느껴져서 저와 R언니는 서로를 쳐다보며 조용히 웃었어요.
시내를 빠져 나온 택시는 어느새 흙먼지 가득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도로에는 차선도, 가로등도 없었죠. 날이 저물고, 주위가 금세 어둠으로 뒤덮였어요. 오랜 비행 시간으로 인해 피곤했지만, 비포장 도로를 시속 100km 넘는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마음 놓고 긴장을 풀 수 없었어요. 안전벨트를 했어도 불안했죠. 저도 모르게 창문 위 손잡이를 잡은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운전 기사들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상대에게 알리려는 듯, 계속 클락션을 울려댔습니다. 맞은편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오는 차량을 간발의 차이로 비껴가기도 했어요.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죠. 젊어서 그랬을까요? 저는 어쩐지 놀이공원에 온 것만 같았어요. 제 마음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가득했죠.
마침내 택시가 도착한 곳은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 한 켠에 자리한 3층 호텔이었습니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흰색 대리석이 깔린 로비에 온몸을 천으로 둘둘 말고 누워 있는 인도인 남자들 대 여섯 명이 보였어요. 체크인을 하는 동안 한 두 사람이 눈을 뜨고 부스스 일어나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호텔방에 들어서자 긴장이 풀리면서도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어요. 방에는 샤워기와 세면대, 변기가 있는 화장실 하나와 침대 두 개가 전부였습니다. 깨끗해 보였던 로비와 달리 방 안 곳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있었죠. R언니는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저는 샤워를 한 뒤 침대 위에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어요. 그렇게 인도에서의 첫날밤이 저물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