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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아 Jan 12. 2023

오쇼 아쉬람과의 첫 만남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참 잘 자더라.”

R언니가 잠에서 깬 제 얼굴을 보며 툭 던지듯 말했어요. 밤새 잠을 설친 듯 지친 표정이었죠. 


아침 8시에 R언니의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서둘러 준비하고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어두침침했던 전날 밤과 달리 흰색 대리석에 아침 햇살이 반사되어 로비는 밝고 환했어요. 그곳에 한국인 여성이 한 명 서 있었습니다. 지적인 얼굴, 단정한 검은색 단발머리, 크지 않은 키에 마르고 단단해 보이는 몸매, 희고 깨끗한 피부를 지닌 여성이었어요. 입고 있는 붉은색 원피스와 어깨에 걸친 같은 색 숄이 그녀의 외모와 잘 어우러져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P언니~~!!”


R언니가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여성에게 달려갔어요. P언니는 30대 후반의 나이었지만 어쩐지 R언니보다 젊어 보였습니다. 저는 R언니 곁에 서서 P언니에게 제 소개를 했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어요.


“내가 어젯밤에도 와보려고 했는데, 너희들이 언제 도착할지 몰라서 그냥 아침에 왔어.”


P언니는 인도에 처음 온 동생들을 더 살뜰히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다정한 말속에 언니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습니다. 오쇼 아쉬람에 가려고 호텔을 나서니, 밖에 ‘HAPPY HOME’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간판이 보였어요. ‘행복한 집’이라는 뜻의 호텔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호텔 문 앞에는 릭샤 몇 대가 서 있었어요. 옹기종기 모여 흙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릭샤 운전사들이 우리를 보고는 재빠르게 일어나며 물었습니다. 


“릭샤?” 


저는 난생처음 보는 릭샤가 신기해서 한번 타보고 싶었어요.


“혹시, 릭샤를 타고 가야 할까요?”

“아니, 여기서 오쇼 센터는 걸어갈만해. 굳이 릭샤를 탈 필요는 없어.” 


P언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릭샤 운전사들을 향해 “노”라고 말했습니다. 오분 정도 걸으니, 자동차와 오토바이, 릭샤, 자전거 등이 뒤엉켜 다니는 2차선 도로가 나왔어요.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도로 양쪽을 살피며 교통량이 뜸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뛰듯이 길을 건넜어요. 그리고, 높다란 흰색 담벼락 옆을 십 여분쯤 걸어가자 ‘OSHO COMMUNE INTERNATIONAL’이라고 쓰인 커다란 철문이 나타났습니다.




웰컴센터 안내 책자 표지


P언니는 철문 옆 ‘Welcome Center’라고 쓰인 곳으로 들어갔어요. 웰컴 센터라고 불리는 그곳은, 처음 도착한 방문객들이 간단한 인적 사항과 증명사진을 제출하고, 에이즈 검사를 받는 등의 등록 절차를 거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를 맞이해 준 사람은 어두운 갈색 머리에 다정한 인상을 가진 백인 중년 여성이었어요. 그녀가 P언니에게 등록 절차를 말해주었고, P언니는 서류를 받아 우리에게 한국어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한국어로 된 안내 책자도 있어서 등록 절차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등록을 마치고 나서 P언니는 오쇼 아쉬람 이용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일 입장료로 100루피, 한국 돈으로 3천 원 정도를 내야 해. 너희가 묵었던 호텔의 하룻밤 숙박료가 300루피니까 인도 물가로 보면 좀 비싼 편이지.”

“그럼, 여기엔 인도인들이 거의 없겠네요?”

“그래서 인도 현지인들 입장료는 30루피야. 그런데 여기는 대부분 미국, 유럽, 일본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사람들한테 100루피가 비싼 가격은 아니야. 보통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의 입장료를 미리 내면, 출입증 위에 입장료를 낸 기간이 끝나는 날의 날짜를 스티커로 붙여줘. 그리고, 이 안에서는 현금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여기 식당에서 밥을 사 먹으려면 웰컴 센터 안에 있는 은행에 현금을 내고 푸드 바우처를 사야 해.”

“푸드 바우처요?”

“응, 이렇게 생긴 종이 카드인데 금액이 쓰여 있어. 사용한 금액만큼 캐셔가 X표시를 할 거야. 자, 이제 마룬 로브를 사러 가자.”


P언니는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자신처럼 붉은색 원피스를 입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 옷을 마룬로브라고 불렀죠. 옷 가게에 들어가 보니 남녀 구분 없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붉은색 원피스가 한가득 걸려 있었습니다. 가격은 디자인과 천의 재질에 따라 달랐지만, 대체로 2, 3만 원 정도였어요. 저는 면으로 된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옷을 골랐습니다. 제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모두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어머, 얘, 넌 마룬 로브가 한국에서 입고 온 옷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린다.”


P언니가 저를 보며 감탄 섞인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저도 거울을 보고 제 모습에 조금 놀랐어요. 한국에서는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스타일의 옷이었기에 그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거든요. 새로 산 마룬 로브를 입은 뒤, 설레는 가슴을 안고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오쇼 아쉬람에 들어갔습니다. 검은색 철문을 지나니, 마치 유럽 동화 속 작은 요정 마을 같은 공간이 펼쳐졌어요. 흰색 대리석 타일이 깔린 바닥, 잘 가꿔진 정원수, 곳곳에 놓인 자애로운 표정의 부처 조각상, 맑은 물을 쉼 없이 뿜어내는 분수, 분수의 물방울로 인해 생긴 작은 무지개, 검은색으로 칠해진 저층 건물들, 그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인종의 마룬 로브를 입은 사람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악. 그곳에 있으니 제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 들더군요.

 

“얘가 아주 신나서 뛰어다니네.”


너무 행복해서 깡충깡충 뛰듯이 걷는 저를 보고 R언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그런 저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았죠. 한국에서 오쇼의 책을 읽으며 상상하고 꿈꾸던 장소에 실제로 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죠. P언니의 안내를 받으며 오쇼 아쉬람 곳곳을 구경했어요. 구경하는 도중에 다른 30대 한국인 언니들을 몇 명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저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았기에 20대 초반의 저를 귀엽게 봐주었어요.


저는 그다음 날부터 오쇼 라즈니쉬가 만든 명상 프로그램을 하나씩 시도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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