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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아 Jan 18. 2024

아쉬람에서 만난 사람들

사랑의 추억

사랑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사랑은 그대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변화시킨다. 동시에 사랑은 그대 자신의 변화를 가져온다.

- 오쇼 라즈니쉬 『짜라투스트라, 사자가 된 낙타의 반역 中』




“오쇼가 살아 있을 때에는 아쉬람의 공기에 온통 사랑의 달콤함이 떠다니는 듯 했어.”


P언니는 그 때가 그리운 듯 아련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쇼 라즈니쉬는 ‘섹스 구루’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성(性)과 남녀 사이의 사랑에 대해 개방적인 가르침을 폈어요. 그래서인지 아쉬람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남녀가 나이를 불문하고 함께 할 짝을 찾기 위해 배회하는 거대한 연애 실험실 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아쉬람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제게도 관심을 보이는 젊은 남자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서점에서 일하던 흑발에 파란 눈을 지닌 그리스 남자가 쿠폰에 하트를 그려서 건네주기도 했고, 할리우드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금발 머리 남자가 저를 보고 수줍게 미소 지으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죠. 한국인 언니들로부터 어떤 일본인 남자가 저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기도 했고, 혼자 앉아 있으면 다가와서 말을 거는 남자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사실 그쯤 되면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골라 만나며 연애를 시작했을 법도 한데, 당시에 저는 어느 누구와도 진지한 만남을 갖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불편해서 모른 척 눈을 피하곤 했죠.


그런 제 마음을 유독 끌어당겼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아쉬람에 도착한지 열흘 정도 지난 어느 날, 마리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손을 씻는 곳에서 처음 그 사람을 만났어요. 190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에 넓은 어깨, 하얗고 예쁘장하게 잘 생긴 얼굴에 안경을 낀, 오렌지색 머리가 인상적인 백인 남자였죠.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외모였고, 그곳에서도 꽤 눈에 띄는 편이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저를 곁눈질로 내려다 보는 시선이 어쩐지 오만하게 느껴져서 저 또한 흘깃 올려다본 뒤 관심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어요.


AI로 그린 기억 속 그 남자 이미지 (by DALL-E 2)


그 뒤로 길을 오가며 그 사람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자꾸 눈이 마주쳐서 신경이 쓰이더군요. 하지만, 잘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먼저 인사하며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계기가 생기길 기다렸죠. 그런데, 도통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의 곁에는 매일 다른 백인 여자들이 있어서 그 모습이 어쩐지 바람둥이 같더군요. 그래서 더 이상 관심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아쉬람에 온지 2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저는 다른 나라에서 온 또래 친구들이 생겼고, 영어 실력이 꽤 늘어서 사람들과의 대화도 편해지는 등 아쉬람에 잘 적응해갔어요. 반면, 함께 온 R언니는 댄스 파티에서 여행 경비를 몽땅 도둑 맞은 일로 상심한 나머지, 예정보다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그 즈음 다른 한국인 언니들이 오쇼 카페 한쪽 구석에 한국에서 가져온 인삼차와 녹차를 파는 Asian Tea Café를 열었고, 저는 언니들 부탁을 받고 그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인들과 유럽인들이 Asian Tea Café의 주요 고객이었는데, 차를 마시러 온 사람들은 제가 차를 내리는 모습이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 아름답다며 칭찬을 해주었어요. 저는 한국에서 예쁘다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고 때때로 못난이 취급을 받았던 터라 그들의 다정한 말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절로 미소 띤 얼굴이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P언니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 마리암 레스토랑에서 제가 앞서 가던 언니와 부딪쳐서 유리로 된 음료수병을 떨어뜨리는 사고를 쳤어요. 순식간에 돌 바닥으로 떨어진 병이 큰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졌고, 순간 거대한 레스토랑 전체에 정적이 흘렀죠. 저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돌부처처럼 가만히 서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누군가 “Nice Show!”라고 외치자 다들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거에요.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고, P언니는 제게 “왜 그렇게 창피해 해? 덕분에 너 여기서 스타 됐잖니.”라고 말해주었어요.


그렇게 제 실수에도 너그러운데다가 제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당시 저는 취업도 못하고 결혼할 남자 친구도 없었던 터라 미래에 대한 불안에 마음이 잔뜩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과 가치를 충족시켜야만 사랑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느꼈고, 항상 제가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사람 같았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전 난생 처음,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으로 조건 없이 사랑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한 인도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참 풍요롭고 행복했어요.


그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오렌지색 머리의 남자가 제 주위를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엔 제가 일하고 있는 Asian Tea Café 카운터에 그 사람이 주문도 안 하면서 붉게 상기된 얼굴에 멍한 눈빛을 한 채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제 가슴에서 따뜻한 에너지가 흘러 나와 그에게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에너지와 감정이 놀랍고 당황스러운데다가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상황인데도 시선을 피한 채 모른 척 했어요. 그 사람은 한동안 카운터 주변을 안절부절 못하며 오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번 우연히 그를 마주칠 때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도망 가버리거나 저를 멀리서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어요.


4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이라면 제가 먼저 그에게 미소 지으며 말을 걸었을 텐데, 20대 초반이었던 당시에는 그에게 관심이 가고 마음이 끌리면서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습니다. 제 고민을 들은 한국인 언니들은 이 곳에서는 여자가 먼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도 된다면서, 일단 대화를 나눠봐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언해주었어요. 하지만, 저는 성관계에 개방적인 아쉬람의 분위기 때문에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그에게 먼저 접근하는 게 겁이 났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눈치만 보는 시간이 계속 되자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인데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했죠.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길 가다 만난 그에게 말을 걸었어요.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그는 놀란 듯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느냐고 물은 뒤, 함께 오쇼 카페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어요. 그는 신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서 팔을 올려 손을 머리에 얹은 자세로 제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고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왔다고 했어요. 그의 이름은 ‘알룩’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오스트리아 이름인지 산야스 이름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그의 나이가 무척 궁금했기에 불쑥 나이를 물었습니다. 저와 동갑이더군요. 그리고 나서는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몰라 갑자기 부끄러워졌어요. 저는 황급히 일어나서 가봐야겠다고 말하며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어요. 등 뒤에서 그의 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때는 꽤나 잘 생겨 보였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평범해 보였어요. 짧은 순간에 느낀 긴장감과 성적 에너지가 너무 강렬해서 기절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고 나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저녁에 식당에서 마주친 그 사람이 욕망에 가득 찬 눈길로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마주한 뒤에는 덜컥 겁이 났어요. 그 때부터 그를 피하기 시작하자, 그는 화난 표정으로 저를 외면하더군요.


그렇게 저의 이상야릇했던 썸이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무 의미 없는 단순 해프닝이었어요. 저는 그저 난생 처음으로 잘 생긴 유럽계 백인 남자가 제게 관심을 보여서 느낀 설렘에 흥분했던 것뿐이었고, 그 사람의 외모와 이름, 태어난 나라 외에는 어떤 사람인지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는 당시에 느꼈던 강렬한 에너지와 감정 때문에 그가 제 운명의 남자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그를 먼저 피했던 제 자신을 후회하고 자책했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또래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타입의 여성이 아니었던 데다가 그 뒤로는 어떤 남자에게서도 그에게 느꼈던 것만큼의 강렬한 감정과 에너지를 느끼지 못했거든요. 더 이상 어떤 남자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만남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한국에서의 제 현실이 비참하게 느껴졌기에 어떻게든 다시 아쉬람에 돌아가서 그와 만나고 싶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오쇼 아쉬람에서 만났던 유럽계 백인들의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참 부러웠기에 저 또한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게 오쇼가 의미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에 아무런 꿈도, 열정도 없었던 20대 시절의 제게, 그들과의 만남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새로운 목표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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