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 공직문학상 수필 동상
어린 손주가 초등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할 때쯤, 할머니의 버섯꽃을 처음으로 보게 됐다. 검버섯이다. 어느덧 나이를 먹어 세포들이 죽으면서 검은 점으로 몰리는 피부병이다. 할머니는 온몸에 버섯꽃들이 활짝 피면 그때 저승사자가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손주에게 했다. 죽음이 머지않았다고 웃으면서 전했다. 버섯꽃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할머니의 등은 굽었고 체취도 강해졌다. 독버섯 같은 독특한 향을 엄마는 노친네 냄새라 했다. 특히 여름만 되면 쉰 냄새가 코끝을 찔렀는데, 어린 손주는 그런 할머니가 부담스럽기만 했다. 버섯꽃이니 저승사자니 하는 이야기도 도통 이해가 안 됐다. 버섯꽃이 싫어 자리를 피했다. 슬슬이 시르렁 슬슬이 시르렁. 할머니는 그때마다 어린 손주가 알아듣지 못하는 민요를 한 서린 목소리로 불렀다.
축축하고 누추한 곳이면 어디든지 돋아나는 버섯처럼 그녀의 인생도 파란만장했다. 한때 할머니도 어린 손주의 나이일 때 부모 손을 잡고 피난길을 떠났겠지. 바리바리 싸든 짐들을 이고 지고 업고 고개를 넘었을 거다. 말 못 할 사연도 많았을 터. 춥고 배고프고 가슴 시린 이야기들 말이다. 술이 들어가면 할머니는 알아듣지도 못할 옛날이야기들을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보릿고개를 넘었다는 등, 며칠을 쫄쫄 굶었다는 등 할머니가 살아온 삶이 이를 보여줬다. 그때만 해도 손자는 할머니의 애잔한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한때 어린 손주는 할머니를 따라서 구리선을 주우러 다녔다. 몇 그램에 얼마에 얼마가 된다는 등. 꼬마 시절 얼마 되지도 않는 구리선에 할머니는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손주를 볼 때마다 안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한두 장을 쥐어주며 까까 사 먹으라고 챙겨주셨다. 그때 그 시절이 그랬을 거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거리도 없고, 춥고 배고프던 시대였다. 전쟁의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폐허에는 먹고사는 또 다른 삶의 흉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검버섯과 할머니의 체취는 그녀의 한 서린 삶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꽃이 피었을 거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보며 눈살부터 찌푸렸다. 속이 타들어 갔을게다. 높아지는 목소리만큼 근심도 컸겠지. 엄마는 할머니의 버섯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번 자리 잡은 독버섯은 뽑히지 않는 말뚝처럼 뿌리내렸다. 그때도 그랬겠지. 할머니의 주검을 보면서, 온몸이 버섯꽃으로 활짝 핀 싸늘한 나목을 보면서 눈물이 났고, 그날의 체취는 평생 잊지 못할 한이 됐다. 파르르 엄마는 손을 떨고 있었다. 아득바득 살아왔을 삶. 각자의 인생이 지고 있는 무게는 함부로 가늠할 수가 없듯, 엄마도 할머니도 힘겹게 살아왔다. 문득 엄마의 얼굴에서 버섯꽃이 피기 시작했다. 작아지는 엄마의 키만큼 세월의 깊이도 더해졌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먼 훗날 내 자녀에게 엄마도 버섯꽃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졌다.
공무원 시험이 끝나고 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천주교 평화공원. 운이 좋은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고도 뿌리도 없는 곳에 할머니가 묻혔고, 그곳에 어린 손주가 공무원으로 추가 합격했다. 죽은 생물로부터 영양분을 얻어 점점 흙을 기름지게 만드는 버섯처럼 할머니가 터 잡은 곳에 손주가 뿌리내리게 됐다. 할머니가 손주의 앞날에 꽃이 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할머니의 산소에서 절을 하고 막거리 한잔을 따라주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숱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할매요, 할매요, 그 강 건너지 마이소. 저도 따라 가겠습니더'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 덕분에 저도 이곳에 왔네요, 할머니도 잘 지내는지요. 불현듯,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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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혁신처 공모전 수상을 시작으로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전도 수상권에 들어갔습니다.
국가보훈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 공모전을 계속준비하고 있는데요. 수상권에 들어간 공모전 글들을 모아 <이기는 공모전 글쓰기>로 내년 초 출간 계획입니다. 관련 글들로 브런치 공모전도 늦지 않게 제출할 생각입니다. 9월 말에 출간하는 <뉴스가 되는 진짜 스토리텔링 보도자료> 책처럼 두쪽모아 찍기, 칼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