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 공직문학상 예비작
나 역시 자베르 경관처럼 냉혹한 정의를 부르짖고 있었다. 법조문에 따라 처리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시청은 입법기관이 아니다. 법에 따라 행정을 처리하는 기관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종이 한 장의 문턱효과다. 촘촘하게 얽힌 법망에 작은 물고기들이 걸리고 또 얼마의 돈에 누군가의 생사가 엇갈릴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법대로 했다고 끝내기에는 상황들이 간단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자체에서 상습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레 미제라블'이 다수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건설 노동자들, 사연이 많은 동네 어르신들, 연고자 없이 떠도는 일꾼들이다.
금요일 저녁 시장실에 찾아가겠다던 그 민원인도 같은 처지였다. 빵 한 조각에 장발장이 됐던 것처럼 종이 한 장의 경계로 범법자로 낙인찍힐 상황이었다. 장발장으로 가는 '문턱효과'다. 문턱 높이까지 발을 들어 올려야 문지방을 넘어설 수 있듯, 일정한 경계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거다.
'정의란 무엇일까' 대답은 아직도 쉽지 않다. 하지만 법이 아는 사람들에게만 관대한 것은 분명하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 기득권층에게 법망은 열려있다. 지역과 계층, 세대를 관통하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들은 세무사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법망의 테두리 안에서 본인들의 권리를 지킨다. 법을 알고 미리 대응한다.
하지만 법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민원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분들은 법의 낭떠러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뒤늦게 담당 공무원들을 탓 하지만, 공무원들도 관련 법 조문을 따르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만 열려있는 법망을 바꿀 수는 없을까. 법(法)은 글자 그대로 '물 수'자에 '가다 거'자가 합쳐져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민원인의 상황도 억울할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도, 본인이 첫째라는 현실도, 사업이 망한 제약도 무엇 하나 본인의 의지는 없었다. 외부에서 규정한 잣대대로 구속받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잣대에는 사각지대가 있었다. 정의를 부르짖던 자베르 경관도 자신만의 원칙이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한 것처럼, 세상살이는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나만의 치열한 고민들이 이 시대의 장발장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