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폭정과 대통령기록관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공모전 출품작
적막한 어둠.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뒤로 횃불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긴장한 듯 몇몇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손에 땀을 쥐는 분위기가 맴돌았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저녁이었지만,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졸린 눈을 깨웠다. '이런 경망스러운...' 사람들은 일제히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을 응시했다. 하얀 도포는 붉은 핏빛으로 번졌고 상투를 튼 머리는 갈기갈기 풀어헤쳐져 있었다. 수십 번 넘게 주리를 틀어서일까. 두꺼운 강목에도 울긋불긋 핏물이 번졌다. 외마디 비명소리가 스산하고 쓸쓸한 적막을 깨웠다. 호조좌랑 김일손. 그는 모진 고초와 고문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사간원부터 춘추관까지 조정의 요직을 두루두루 거친 김일손은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사초 하나에 사달이 났다. 김종직의 '조의제문'. 세조 즉위를 에둘러 비판한 내용으로 임금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연산군의 '무오사화'로 당시 조정은 피바람이 불었고, 사초를 쓴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다. 김종직은 무덤까지 파헤쳐지는 수모를 겪었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서뿐이다. 춘추에 이르기를 어버이를 위하는 자는 은휘 한다 하였으니 사관(史官)은 시정만 기록해야지 임금의 일을 기록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 연산군일기(연산 12년 8월 14일)
연산군의 역사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초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임금은 사사건건 사관(史官) 업무에 개입했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임금의 행동은 역사에 구애받을 수 없다며, 연산군은 선조 임금들이 지켜왔던 전통을 뒤집기 시작했다. 사관에게 임금의 일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이를 거스르는 사관(史官)에게 신언패(愼言牌)까지 씌웠다.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이 드나드는 문으로 스스로 함구령을 내렸다. 사관(史官)은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무엇하나 자유롭지 못했다. 비판과 견제가 사라진 조정.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폭군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중종반정(中宗反正)이었다.
조선왕조를 500년 넘게 지탱한 힘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역사 기록(記錄)이다. 사관들은 조정의 정무 기록이 담긴 '시정기'부터 임금의 개인적인 문서까지 실록에 녹여내며 실록의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실록은 임금의 시시비비를 가리며, 현재 권력에는 견제와 균형을 후대 왕들에게는 통치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지난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이 제정된 이후, 대통령기록관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역대 정권의 시작과 함께 대통령기록관은 언제나 검찰 수사의 대상이었다. 정치적 쟁점마다 등장하는 대통령 기록과 검찰의 압수수색 등으로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대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보여주기식 기록들만 생산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초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대한 취지를 살려야 한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대통령은 국가원수의 자격이므로 이때 생산한 문서 역시 후대 정권의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보존돼야 한다. 조선 왕조에서는 간행을 위한 사관(史官)의 기록을 임금도 볼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실록의 간행 자체가 절대 권력자인 임금의 전횡을 막는 기능을 했다고 후대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때문에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년 동안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90%대에 달했다. 법원행정처에서는 압수수색 영장도 구속영장처럼 실질심사를 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며 제도 개선에 나섰다. 증거인멸에 대한 측면과 자료의 대외비 성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법원의 의지가 담겼다.
미국은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대통령기록물을 관리한다. '끊임없는 감시가 자유의 대가'라는 설립 목적에 따라 미국은 기록관리청을 독립기관으로 운영한다. 대통령의 공식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6.25 전쟁 때 한국의 고등학생이 보낸 위문편지까지 기록관리청의 기록물은 실로 방대하다.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미국 기록관리청이 많은 양의 기록물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역사관에서 비롯됐다. 이는 몇 년 전 공개된 존에프 케네디 대통령 암살기록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과 공화당의 역대 대통령들은 케네디 기록을 공개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벽에 가로막혀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대 정권에서 검찰수사의 살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대통령기록관이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어 기록(忌錄)이 아닌 기록(記錄)의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