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의 백제, 문화로 꽃 피다
[공모전 글쓰기]
파르르 떨리는 두 손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숨소리를 틀어막듯 입술은 한일자로 미동도 없었다. 지그시 눌러 닫고 있었다. 어스름 지는 저녁노을을 뒤로한 채 눈가는 점점 촉촉해졌고 무심한 듯 해만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빛바랜 저고리가 바람에 나풀대며 간절한 듯 절실하게 한 여인의 어깨는 굽어 갔다. 갈기갈기 뻗어 나온 억새풀만이 속 타는 달빛을 희롱할 뿐이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어걍됴리. 아으 다롱디리' 지아비를 가슴에 묻은 한 여인은 그렇게 돌이 됐다. 백제 정읍사에 나오는 '망부석' 설화다.
구구절절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정읍사의 가사는 오랫동안 대중들 입에 오르내렸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어루만지며 문학 콘텐츠는 힘이 실렸다. 책자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힘이다. 백제 정읍사는 훗날 조선시대 악학궤범과 고려사에 실리며 역사적 가치도 증명해 냈다. 종묘제례악으로 작자 미상의 대중가요로 '소프트 파워'는 입증됐다. 궁중부터 저잣거리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반석 위에 우뚝 선 백제는 '돌'과 인연이 깊다. 백제 초기 돌무지무덤인 석촌동 고분군부터 백제가 건국하면서 도읍으로 삼던 풍납토성이 그렇다. 망부석 설화처럼 단단했고, 아기의 생일을 알리는 '돌' 같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일찍부터 중원을 점령한 백제는 한강을 중심으로 단단한 문화 기틀을 세웠다. 고구려와 신라의 끊임없는 침략에도 문학적 가치는 잃지 않았다. 모진 풍파와 시련은 오히려 백제라는 가치를 단단히 옹골지게 했다. 숱하게 수도를 옮기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것이다.
덧셈과 상생의 문화공동체. 백제를 두고 한말이다. 열린 문화를 밑거름으로 백제는 삼국시대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웠다.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금동대향로부터 중국과 일본 문화를 한 곳에 담은 무령왕릉은 백제의 문화적 위상과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주변 국가와 끊임없이 교류했고 특정 종교와 학문에 매몰되지 않았다. 정림사지 석탑과 벽화 등에서도 그렇듯 섬세하고 우아한 멋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백제 문화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성왕 때 노리 사치계가 최초로 불교를 일본에 전파했고 혜총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됐다. 비단길과 바닷길을 따라 아라비아와 서구로도 퍼져나갔다.
뿌리 깊은 나무가 곧게 뻗어 간다.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백제의 문화 혼을 이어받은 서울 송파구에는 케이팝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다.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라는 반석 위에 새로운 문화가 꽃피우고 있다. 민들레 홀씨처럼 세계 각지로 뻗어나갈 채비를 마쳤다. 해가 지지 않는 도시처럼 건물 곳곳에는 24시간 월화수목금금금 불이 꺼지지 않는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연습생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백제 근초고왕은 일본에 칠지도를 하사하며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주변에 알렸듯 케이팝 성지인 송파구에서 전 세계 곳곳에 태극기를 꼽고 있다. 이제는 한류다.
백제의 기틀은 단단하다. 망부석처럼 단단한 돌이자 첫 시작을 알리는 돌이다. 서울 특례시 송파구에는 백제 예술혼이 서려있다. 둥지를 튼 곳곳에는 문화와 번영, 공동체와 내일이 숨 쉬고 있고 그 중심에는 한성 백제 박물관이 있다. 역사적 가치와 문화는 앞으로 전 세계 '시금석'이 될 것이다.
<작가가 궁금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