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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속 얼룩진 언론의 그림자

by 방구석 지식in


"너 기사 이딴 식으로 쓸래? 씨x"


아침부터 급하게 전화가 와서 불려 갔습니다. 국장님께서는 잔뜩 화가 나셨죠. 기사가 기사 같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니 기사를 못쓰겠으면 배우라고 좀" 호된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몽둥이로 이른바 '귓방망이'를 맞은 듯했습니다. 그래도 성이 안 풀리셨는지, 매섭게 저를 노려보시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사회생활도 했고 나이도 처먹을 만큼 먹었는데, 그 나이 동안 뭘 한 거니" 그렇게 20분 가까이 서서 '참을 인'자를 계속 마음에 새겼습니다.


참 허탈했습니다. 상황만 보면 어느 언론사인 듯 하지만, 여기는 00시청의 기자실이었습니다. 사실 지방 언론사 기자들은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들이 많습니다. 시청 언론팀에서 써준 기사를 그대로 베껴쓰기를 하는 겁니다. 제가 써서 올린 기사를 지역 언론사와 인터넷 매체 등 10곳 넘는 곳에서 이른바 '우라까이'를 했지만, 그 언론사 기자는 보도자료를 줄여 쓰는 것도 못했던 겁니다. 기사에 이상이 없다고 팀장님과 과장님의 결재를 받았던 내용들이라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왜곡된 미디어 생태계...시청 돌며 이권개입


풀뿌리 지역의 미디어 생태계는 일부 오염됐습니다.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의 순기능은 뒤로 한채 본인들의 호주머니만 채우고 있던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지방지 기자의 목적은 광고였습니다. 시청 언론팀 공무원들을 길들인 다음 광고 액수를 늘리려는 겁니다. 제가 험한 꼴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선배 공무원께서 저에게 귀띔해 줬습니다. 00시청에만 언론사 기자가 300곳이 넘게 등록돼 있는데, 문제는 이런 왜곡된 언론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언론사에는 흔히 광고 기자와 취재기자가 있습니다. 취재기자들은 출입처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입니다. 단순히 보도자료를 보고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도자료를 찾아서 다닙니다. 이렇게 기자 본연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시청에는 그렇지 않은 몇몇 기자들이 있습니다. 언론이라는 제도 뒤에 숨어 이른바 '돌격대'를 따로 분류해 시청해 파견한 겁니다. 왜곡된 미디어 환경과 몇몇 기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안타까웠습니다.


시청 내에서는 그런 기자들을 '브로커'라 부릅니다. 이들은 비단 언론팀에 광고 협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의 각 부서를 돌면서 이권까지 개입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립니다. 심한 경우에는 시청의 주요 사업이 포함된 기밀문서를 훔쳐서 본인의 이권을 위해 팔아먹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밖에 있었을 때 지방지 기자들의 심각성은 많이 들어봤지만, 안에서 보니 가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심한 일도 많았지만 글로 쓰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 주요 타깃 된 '건설업'...무리한 광고 요구 '갑질'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방지의 어떤 기자가 건축과를 찾아가서 깽판을 놓고 온 겁니다. 광고 액수를 늘려달라며 건축과 과장님의 멱살을 잡아챘습니다. 깜짝 놀란 건축과 과장님을 두고 과 사무실 분위기도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험한 꼴을 당하기 싫으면 광고 액수를 늘리라는 건데, 이건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입니다. 시청 안은 이 정도로 마무리됐지만, 시청 밖은 말 그대로 정글입니다.


건설사는 지방 언론사의 주요 타깃이 됩니다. 돈의 액수가 클 뿐만 아니라 건설에 대한 제약도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기자들은 소음, 분진, 미세먼지 등을 트집 잡습니다. 언론사에 광고를 하지 않으면 시청의 인허가 부서나 환경부에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겁니다. 종종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광고를 하는 경우 주택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리 승냥이 떼처럼 많은 언론사들이 덮치기 때문입니다. 몇몇 건설업체들이 언론사를 인수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인신모독을 했던 기자와 건축과에서 깽판을 친 기자는 모두 동명인입니다. A매체의 권 모 기자입니다. 권 기자의 1년 광고할당 금액은 1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제는 비슷한 상황의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많다는 겁니다. 제도권 속 얼룩진 언론의 그림자입니다. 국민의 혈세와도 같은 세금이 빼앗기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앞으로는 지역사회가 수탈의 장소가 되지 않길 기원합니다. 법적, 제도적인 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작가가 궁금하면>

[브런치북] 노량진에서 꽃핀 연화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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