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미국인도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경계인이었다.
사회는 이들을 양공주라 불렀다.
- 기지촌의 그늘 넘어 -
전쟁의 쓰라린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북녘 땅을 지척에 둔 곳곳에서 화려한 조명들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6.25 전쟁 직후 삼팔선을 마주한 대한민국 북쪽 지역에 하나둘씩 미군 기지촌이 들어선 겁니다. 미국 달러가 쏟아지면서 점차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시베리안 겨울바람에도 배고픈 여성들이 하나둘씩 모이면서 마을이 생겨나고 사랑이 꽃 피게 된 겁니다. 기지촌은 전쟁의 폐허 속에 자리한 '아메리칸드림'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미국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희망도 있었을 겁니다. 이를 보여주듯 1970~80년대에만 매년 4천 명 가까운 한국 여성이 미국 군인의 아내로 한국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네들 중 많은 여성들이 잡초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전쟁과 번영, 참혹함과 화려함 그리고 사랑과 배신이 미군 기지촌에서 공존한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진짜였고 누군가에게는 허황된 신기루였을 겁니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 사이로 어둡게 가리어진 여성들의 뒷모습이 있었습니다. 기지촌 여성들의 삶은 기지촌으로 들어오는 과정도 또 그곳을 벗어난 결과도 기구했습니다. 전후시대 배고픔을 잊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간 여성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은 여성도, 미국이라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들어간 여성도 있었지만, 기지촌이 동전의 양면성을 가진 듯, 그녀들의 삶도 그랬던 겁니다. 이들은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었습니다. 미국인에게는 하룻밤 불장난으로 비쳐졌고, 한국인에게는 손가락질도 받았습니다. 미국인의 편견과 한국인의 편견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한때 기지촌으로 번화했을 거리를 걸으며, 그녀들의 삶을 되돌아보며 느낀 생각들입니다. 전쟁의 쓰라린 상처는 비단 동족상잔의 슬픔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서글픈, 애잔한 삶에도 영향을 줬던 겁니다.
■ 소외된 군사도시...시민참여로 기지촌에 문화 더해
격세지감입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북한과 마주한 곳으로 소외된 군사도시, 경기도 파주시에는 전쟁의 아픔을 지우기라도 하듯 최근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도시재생과 시민참여를 중심으로 전쟁의 상처를 평화로 승화시킨 겁니다. 연풍길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미군 기지촌에 연풍길을 조성하며 파주시만의 평화 관광지를 만들었습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죽어가던 도시에 문화의 길 , 평화의 길이 조성됐습니다.
파주읍 일대는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던 곳으로 그 주변으로 기지촌이 번화했습니다. 미군들을 위한 음식점이나 술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용주골 역시 이런 환경에서 자리 잡았습니다. 문제는 미군이 떠난 이후였습니다. 1980년대 미군은 떠나갔지만, 기지촌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생기를 잃은 도시에서 남은 사람들마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기지촌이 방치된 겁니다. 지역은 쇠락했고 주민들은 의욕을 잃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지 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죽어가던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사업으로 '창조문화밸리 프로젝트'에 주민들이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행정안전부 개발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지난 2018년부터 사업의 일환으로 EBS 연풍길 조성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 문화광장과 참여광장으로 지역특색 꾸린다
큰 틀에서 주민친화 도시재생과 EBS 콘텐츠 도입이 진행 중인데, ▲모임 공간 조성 ▲작가 체험실 조성 ▲연풍길 꾸미기 등이 있습니다. 지난해 연풍경원, 연풍마루, 연풍다락 등 EBS연풍길의 주요 거점시설 조성을 완료했는데, 지역 브랜드(연풍) 개발과 통합 주민조직(연풍 다음)을 발족해 활성화 기반도 마련했습니다.
주민행사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연풍길에서 '연다라 풍년' 주민행사가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주도하는 행사로 다양한 시도들과 볼거리가 있었죠. 연다라 풍년 행사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정기 행사입니다. 연풍리 주민협의체를 비롯해 파주 주민들이 참여하는데, 파주시는 지역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시민들의 참여를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합니다.
<작가가 궁금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