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러내지 않는 행동에 '진통'...본인 돋보이자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유서 깊은 전통이 엉뚱하게도 공무원 조직에서 통용됩니다. 공무원 조직 내에서 공공연하게 돌고 도는 말입니다. 남들과 비슷하게 존재는 하지만 업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아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특출 나게 업무를 잘하면 남들의 모든 업무를 떠 앉게 되는데, 승진도 느리고 월급도 적은 공무원 조직에서 오래 일 못한다는 겁니다. 최근 분위기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줄줄이 퇴사하는 10년 차 이하의 공무원 가운데, 능력 있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용어처럼 능력 있는 인재들이 빠져나가면서, 공무원 조직은 오늘도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공무원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소수직렬 12명 가운데 6명이 사표를 쓰고 나갔습니다. 절반은 개인의 부적응도 있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공무원들의 업무처리 방식 문제라 생각합니다. 공무원을 떠난 30대의 시청 동기도 이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직렬은 달랐지만 같은 팀에서 언젠가 함께 일하고 싶은 외향적인 성격의 동기는 공무원을 나가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업무가 본인에게 집중되면서 불만이 있었다는 겁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건건이 떨어지는 업무가 쏠리면서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읍면동 사무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몇몇 팀장님은 하루 업무가 웹서핑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누군가의 업무는 누군가의 초과근무가 되는 현실입니다.
존재하면 드러나 보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본인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는 시대입니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 김범수 카카오 센터장, 손정의 소프트 뱅크 이사장 등 본인의 분야에서 신화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면서 본인만의 업적을 만든 위인들의 이름 세 글자가 곧 업계 표준이 됐습니다. 브랜드이자 대명사로 굳어졌습니다. 누구는 창고에서 창업의 서사를 써내려 갔고, 돈 몇 백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은 그렇게 마케팅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지갑은 얇았지만 가슴은 뜨거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됐습니다. 공무원 조직이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열려 있습니다. 본인 업무에 대한 자부심과 프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 공직문화 혁신...능동적인 공무원 키워야
철밥통. 군대식 조직문화. 불친절한 민원실. 그동안 공무원을 보여주던 단어였습니다. 시민들이 마음 편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공무원의 연공서열 때문입니다. 쉽게 잘리지 않는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열심히 일 안 해도 들어온 대로 승진했죠. 순서대로 진급을 하니 누구만큼 더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욕 안 먹을 만큼만 일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몇몇 공무원의 행동이 조직 전체로 전염되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100을 기준으로 80만 일을 하는 경우나 120만큼의 일을 하는 경우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조직의 특성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귀를 닫은 공무원들이 많아질수록 그 피해는 민원인들에게 돌아갑니다. 특히 공무원 조직은 군대와 비슷해서 연차가 쌓일수록 업무를 소홀히 하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제가 본 공무원 조직도 관련 기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공무원들도 있습니다. 변화가 시급해 보입니다.
최근 이런 공무원 조직을 바꾸기 위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사기업의 업무 방식을 공무원에 적용하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앞서 정부는 공직문화 혁신을 위한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노동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여기에는 인사 승진 시스템에 대한 제도 개선과 중요직무급 인원을 늘리는 방안이 담겼는데, 우선 공무원의 승진을 평가할 때 연공(호봉) 점수의 반영비율을 20%에서 10%로 낮추는 겁니다. 먼저 들어와서 먼저 승진하는 이른바 '선입선출식'의 인사 시스템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직무급 제도도 정착시켜 열심히 일한 만큼 승진도 빨라지고 연봉도 많이 받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조직개편, 인사혁신, 인식 개선을 기반으로 열린 문화를 만들어 적극행정을 장려하는 것은 어떨까요. 공무원 스스로도 본인의 이름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길 바랍니다.
<작가가 궁금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