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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Sep 27. 2022

약봉지 하나와 층층시하 이름들

노량진을 떠나고


■ 공무원 공황장애 '순직' 인정...행정법원 판결


공황장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어느 소방공무원에게 순직이 인정됐습니다. 서울 행정법원은 소방공무원의 자살을 놓고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로써 어느 소방공무원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오열하는 부모님 모습이 비쳤는데, 주변 사람들은 아픈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순직한 공무원이 그동안 속앓이를 해왔던 과정들도 공개됐습니다. 이 공무원은 12년 동안 구급업무를 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지난 2015년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겁니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 않더라도 공황장애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공무원은 이보다 더 많습니다.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는 공황장애, 가슴이 뛰고 심한 경우 발작까지 이어지는 공황장애는 치료가 시급한 병입니다. 차일피일 미루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겁니다. 공황장애나 불안장애를 앓는 공무원들은 하루하루를 약봉지 하나에 의존합니다. 타는 듯한 목마름에 심장박동소리가 턱밑까지 들리고 숨소리도 헐떡거립니다. 사무실에만 오면 숨쉬기 힘든 공무원들이 여럿 있습니다. 



■ '계급사회' 점철된 공무원...층층시하의 이름들


공무원 조직은 계급사회입니다. 9급부터 시작해 8급, 7급, 6급 줄줄이 계급이 이어져있습니다. 제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처음 시청에 들어왔을 때 끝자리에 배치됐는데, 마치 군대 이등병이 내무실 끝쪽에 배치된 것과 비슷했습니다. 직제표 사이로 줄줄이 첩첩산중으로 덮인 계급표를 봤을 때는 한숨부터 나오더군요. 겹겹이 쌓인 층층시하의 이름들입니다. 시어머니에 그 시어머니들이 수두룩했습니다. 


늦깎이 중고 신입들은 더 힘들어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청의 9급 공무원은 일찍 들어오는 신규자들이 많은데, 한 살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서로가 불편해지는 겁니다. 인수인계를 해주는 젊은 선임과 이를 잘 못 알아듣는 어수룩한 중고 신입이 그렇습니다. 고구마를 먹은 듯 속이 답답합니다.


공무원 조직은 군대조직과 비슷합니다. 이등병과 일병 때 개고생을 하면 상병이 꺾이고 병장을 달 때쯤 편해진다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6급 팀장이 꺾인 상병, 5급 과장이 말년 병장에 해당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군대와는 달리 공무원은 생활이 조금 깁니다. 군대는 2년이지만 공무원 생활은 30년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20년 넘게 근무해야 팀장을 달 수 있습니다. 팀장을 달고 5년이 지나면 과장을 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쉽게 말해 한 세월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곳곳이 지뢰밭...열린 조직과 문화 필요


늦은 나이에 들어와 진급도 쉽지 않지만 문제는 보고체계입니다. 사람 때문에 업무가 술술 풀리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안되기도 하는 것이 업무입니다. 그만큼 중간에 사람 잘못 만나면 쉽게 갈 일도 돌아가는 겁니다. 보고에 보고 체계가 이어져 있는 게 공무원 조직의 특징인데, 줄줄이 이어진 보고에서 랜덤으로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는 겁니다. 책임 전가 형부터 결재 안 해주는 팀장님까지 사례도 각양각색입니다.


내 자녀와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공무원 조직은 일반 사기업들과 달리 40~50대가 두텁습니다. 사표를 쓰고 나가는 연령대가 10년 차 이하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단절될수록 자녀는 일찍 독립하고 싶어 하듯, 공무원 조직이 닫혀있을수록 상대적으로 나가는 신규자들이 많습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처럼 가정이 화목해야 밖에서 일도 잘됩니다. 마찬가지로 공무원 조직 내 소통이 잘 될수록 민원인들의 민원업무나 정책 기안을 비롯한 대외업무도 수월하게 추진될 수 있습니다.


열린 조직을 위해 오늘은 먼저 말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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