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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Sep 26. 2022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노량진을 떠나고


■ "9급 공무원은 복사만 한다며?"


사무관인 대학교 친구가 건넨 말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걸요. 문서 복사는 기본이고 민원인 응대부터 수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기안문 작성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합니다. 일이 없을 때는 편하게 하루가 지나가기도 하지만 일이 몰아치면 밥 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건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바쁜 날에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급하게 식당을 나와서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시작합니다. 야근에 주말 출근도 밥먹듯이 했습니다. 어려운 재산세 업무를 배우기 위해 첫 6개월 동안은 주말 이틀 중 하루를 내리 출근했습니다. 세금 액수도 마냥 적지는 않더군요. 세금을 되돌려 주는 환급 금액이 2억 원이 넘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9급 공무원이 복사만 한다고 생각이 드시나요?


복사도 그렇습니다. 한 번에 100장이 넘는 복사도 해봤습니다. 복사도 만만한 게 아니더군요. 불현듯 이전에 다니던 사기업이 생각났습니다. 늦은 나이에 9급 공무원 생활이 후회가 들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도망쳐 나온 곳에 천국은 없었습니다. 마냥 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9급 공무원 현실은 딴판이었습니다.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고 계신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 그런데 월급은 왜 쥐꼬리냐고


그런데 9급 공무원 월급은 참 소박합니다. 은행 계좌에 세후로 200만 원도 안 찍혔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상여금(?) 인가 두 눈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겸손한 저의 성격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20대 후반에 사기업에서 받던 월급의 절반보다 작았습니다. 물론 그만큼 업무강도도 상대적으로 낮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9급 공무원 업무가 쉬운 건 또 아닙니다.


그래서 많이들 그만두는 것 같습니다. 동기 12명 중에 절반인 6명이 사표를 쓰고 나갔습니다. 들어온 지 하루가 멀다 하고 나간 겁니다. 생각보다 월급은 턱없이 작고 그렇다고 일이 쉬운 건 아니라서 그런 겁니다. 공무원 연금이 가장 먼저 깎일 것 같은데 기여금만 교회의 십일조처럼 빠져나가고, 건강보험료도 사기업과 달리 공무원 월급에서 100% 다 나갑니다.


여기에 상록 회비에 뭐뭐에 하면 차포 빼고 장기를 두는 것 같습니다. 같은 업무에 중소기업을 가도 세후 월급 200중 후반은 받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안정성, 철밥통 때문인 거겠죠? 저를 비롯해 대한민국 모든 9급 공무원들 앞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이는 낳을 수 있을까요?



지난해 국가공무원 8,500명 떠나, 처우개선 필요


인사혁신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국가직 공무원 8501명이 공직을 떠났습니다. 6급의 퇴직자 비율이 있다고 하지만 8급과 9급의 퇴직자 비율이 변화가 중요합니다. 5년 차 이하 공무원들이 공직을 그만둔 비율이 50% 넘게 증가했습니다. 이유는 결국 처우 때문입니다. 고용한파에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왔는데, 월급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공직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자긍심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면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가는 분위기입니다.


급여 문제와 함께 공직 이탈을 가속화하는 것이 근무 여건입니다. 민간 기업보다 월급은 절반 이하인데,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열린 행정과 시민중심의 공직관이 확립되면서, 민원업무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에는 똑똑한 민원인들이 많아서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경우도 늘었고 행정업무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공무원들의 인기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는데 격세지감이 듭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규자들의 자리가 빠지는 상황입니다. 신규 공무원들의 이탈이 빨라지면, 나머지 공무원들의 업무가 가중됩니다. 인력공백이 자칫 행정공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우려되는데,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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