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 지식in Sep 27. 2022

누군가에게 기울어진 해바라기

노량진을 떠나고


"거기가 시청 재산세팀이오?"


시청에서 업무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둔탁함이 묻어난 성량에서 뭔가 언짢음이 느껴졌습니다. 대뜸 자초지종을 설명한 민원인은 짜증을 이어갔습니다. 아니 일을 어떻게 하길래 지난해보다 종합부동산 세금이 10배나 넘게 나왔단 말이오. 나는 이 세금 못 내오. 부랴부랴 다급하게 선생님의 인적사항을 조회했고 법원 등기를 비롯해 재산 내역을 확인한 결과 서울의 아파트와 이쪽 지역에 주택부속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때문에 합당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그렇게 30분 가까이 실랑이를 이어갔지만, 서로 평행선만 달렸습니다.



■ 생소한 용어에 '갸우뚱'...법망 사각지대


문제의 근원은 '주택부속토지' 개념이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이 용어는 말 그대로 주택에 부속되어 있는 토지입니다. 이는 주로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을 때 혼란을 일으킵니다. 본인이 공동 소유로 토지만 갖고 있더라도 그 위에 주택이 있으면 종합부동산 세금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재산세를 체납한 어르신도 같은 사례였습니다. 어르신은 부모님께 상속받은 땅을 친형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었는데, 친형이 그 위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겁니다. 시청에서는 인공위성지도를 통해 매년 토지대장과 건물 등을 확인해 세금을 부과하는데, 그 건물은 무허가 농어가 주택으로 부과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미국으로 이민 간 형은 이미 돌아가셨고, 그래서 농어가주택은 사실상 오랫동안 방치돼 왔던 겁니다. 주택으로 시청 재산세 대장에 잡혀 있었던 점, 종부세 법안이 강화된 점이 어르신에게 억울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민원인의 친형이 무허가 건물을 창고로 신고를 했었다면, 동생분도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시청에서 제때 확인했었더라면 종부세 폭탄은 없었을 겁니다.


다른 업무를 제쳐두고 출장부터 다녀왔습니다. 어르신께서 갖고 있는 토지는 운 좋게도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로 종부세 폭탄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시청 민원실을 찾아온 어르신은 그때의 상황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했습니다. 200만 원 가까이 나오던 종부세가 2천만 원 넘게 나와서 그때부터 한숨도 못 주무셨다는 겁니다. 신경안정제를 포함한 약봉지를 보여주시더니 푸념을 늘어놓으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금을 일정기간 체납하면, 독촉과 압류절차를 거쳐 집안 재산들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갑니다. 세간살이 업무가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되는 겁니다. 이번 일로 한순간에 10년 넘게 늙었다며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다행히 이번 사안은 좋게 매듭 되었지만, 모두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 아는 사람에게만 유리...기울어진 해바라기


법은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대합니다. 누군가에게만 기울어진 해바라기입니다. 공무원으로 일해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습니다. 사실 개인사업자들은 이미 재산세, 종부세, 취득세, 양도소득세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세금과 한국의 기준금리, 부동산 정책 등등을 모두 고려해 시세차익을 누립니다. 법인사업자들 역시 개인 세무사를 고용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본인들의 이익을 얻습니다. 하지만 법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민원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세법과 정부 정책에 대해 관심이 없으셔서 법의 낭떠러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뒤늦게 담당 공무원을 탓 하지만, 공무원들도 관련 법조문대로 집행하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법은 글자 그대로 '물 수'자에 '가다 거'자가 합쳐져 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모두에게 열려있기를 기원합니다.


촘촘한 법망 역시 제도적인 수정이 필요합니다. 법의 취지는 좋더라도 현실에는 역효과가 나오는 부분들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법망이 촘촘해질수록 물고기는 씨가 마르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는 굶어 죽습니다. 과세 관청과 납세자 역시 이와 같은 관계입니다. 때문에 촘촘한 그물도 때에 따라서는 조금 느슨해져서 시청 민원실에서 억울한 어르신들이 줄어들길 기대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위라클, 우리 안에 작은 기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