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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Oct 26. 2022

호밀밭과 사과나무 한 그루

노량진을 떠나고


호밀밭에는 꼬마들이 놀고 있었지.
나는 아이들이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줄 거야.

- 호밀밭의 파수꾼 -



진흙탕 같은 현실에도 순수함이 엿보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동생이 사는 순수의 세계와 속물의 영역에서 혼란스럽습니다. 선과 악의 분절된 세계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자아분열도 뒤따랐죠. 단절된 듯 공존하고 손에 잡힐 듯 가깝고도 먼 곳만 바라보던 주인공. 잇따라 학교에서 퇴학당하며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댔고, 여자들에게도 집적댔습니다. 의미 없는 시간만 흘려보낸 겁니다. 이분법적 상황 속에서 내적 갈등을 일으키지만 역설적이게도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부조리만 득실거렸습니다.


'호밀밭 파수꾼'은 작가 본인의 일기였습니다. 마음 한편에 웅크리고 있던 사춘기와 마주했지만, 극복하지 못한 이야기. 끝내 작가는 성장통을 받아들이길 거부했습니다. 열병처럼 찾아왔지만,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인생 곳곳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렸습니다. 작가는 소설 집필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람들을 피해 다닌 겁니다. 날것 그대로의 사춘기 때문이었을까요. 욕설이 난무하고 문란한 표현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발표 당시에는 금서의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 10년 뒤 호밀밭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호밀밭의 파수꾼'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호밀밭을 가로지르며 치열한 고민이 있었을 겁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앳된 청춘과 훗날의 노년이 스쳐가는 광장. 호밀밭은 우리들의 광장입니다. 마음 곳곳이 피투성이가 되고 폭식하듯 섭취했던 생각과 지식들을 토해 뱉는 공간. 현실에 대한 회의감과 성취가 평행선처럼 내달리는 그런 곳입니다.


광장에서 또다시 K를 만났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사춘기를 함께하며 20년 가까이 알고 지냈습니다. 10년 전에는 오늘의 지금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털어놨습니다. 홍대 밤거리를 수놓으며 일반인들과 다른 시차를 살았던 그때, 풋풋한 사랑을 열변하듯 쏟아내며 소주잔을 기울였던 그때, 학업과 취업 그 면면에서 일희일비하며 도서관의 밤을 밝혔던 그때. 그 순간마다 광장에서 호밀밭에서 함께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럴듯한 껍데기를 뒤집어썼지만, 그때를 기억하며 달빛 아래를 걷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10년 뒤 우리는 호밀밭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열린 광장에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서로 각자의 사과나무를 준비하기로. 비록 삶이 우리 인생을 속일지라도 그렇게 희망을 심기로 했습니다. 10년 전, 지금 우리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모습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저는 무난히 대학교 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인생은 결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10년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뒤에도 그렇게 흘러갈 겁니다. 그래서 저는 호밀밭에 사과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내 인생을 구원해줄 사과나무, 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과 영양분을 줄 겁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사과나무는 열린 광장에서 탐스러운 사과 열매를 맺고 있겠죠. 시작은 글쓰기입니다.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구가 되는 책이야.

- 호밀밭의 파수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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