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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Oct 30. 2022

모차르트와 '2인자' 증후군

노량진 언저리에서


신은 왜 저런 녀석을 자신의 도구로 삼았을까

- 아마데우스 영화 中 -



능청스러운 웃음소리,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 가벼운 행동, 겸손하지 않은 소비 습관으로 누군가의 미움을 샀지만, 후세에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거창하고 성대하게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4살에 협주곡을 연주하고 7살에 교향곡과 12살에 오페라를 작곡하며 위용을 떨쳤습니다. 이름에 걸맞은 실력이었죠. '돈 지오반니'와 '마술피리'를 비롯해 35살의 짧은 생애 동안 6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찬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악보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신의 사랑을 받았다'는 뜻의 아마데우스. 누군가에게는 은총이 가득한 삶이었지만, 누군가는 2인자의 그림자에서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살리에르입니다. 문화와 경제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궁정 악장을 역임했지만, 그 이름은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살리에르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등 후대 교과서를 장식한 음악가들의 스승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모차르트를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독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인 의심은 가능했을 겁니다.



■ 우리 주변의 모차르트, 살리에르 증후군에 무력감


노량진 수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1년 만에 7급 감사직을 합격한 대학생부터 서울시와 국가직 등 2~3곳을 두루두루 합격한 수험생들까지 다양합니다. 제가 노량진에서 공부할 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저는 월화수목금금금 쏟아부으며 공부했지만, 그 친구는 연애도 하고 하루에 2~3시간 저보다 적게 공부했는데도 합격해서 노량진 수험가를 떠났습니다. 학원 선생님들의 충고가 맞는지 회의도 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른바 '엄친아'들의 이야기는 많을 겁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압도적인 실력과 능력, 혀를 내두르게 하는 결과물. 주변 사람들은 지켜보기만 해야 할 때를 가리켜 살리에르 증후군이라 부릅니다. 비슷한 직종이나 직장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탁월하게 뛰어난 1인자를 보며, 2인자로서 열등감이나 무기력감을 느끼는 현상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심지어 사회에서도 저 역시 숱하게 살리에르 혹은 3인자, 4인자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병풍으로 전락했다는 생각이죠. 신은 왜 제가 아니라 저런 녀석을 자신의 도구로 삼았을까요. 특히 인격적으로 미숙한 친구들을 봤을 때는 배가 더 아팠던 게 사실입니다.



■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자"


완벽주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저마다 삶의 방향은 제각각인데, 제가 안 되는 방향만 고집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돼라"는 어느 시구절이 마음 한편에 다가왔습니다.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 엘렌 코트의 미국 시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사회 모든 부문에서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것과 같을 겁니다. 잘했던 분야가 있더라도 처음 하는 분야는 늘 새롭고 낯섭니다. 삶은 몇 번이고 엉뚱한 방향을 헤매다가 겨우 올바른 방향을 찾는 미로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숱하게 옹알이를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격형성 과정에서 열등감에 주목했습니다. '살리에르 증후군'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입니다. 1인자를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지만,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에서 개인의 인격이 뒤틀릴 수 있다는 겁니다. 양날의 검처럼 그림자에 갇혀 살면, 왜곡된 인격으로 힘들게 되지만, 건강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면 성장과 성숙의 마중물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빛과 그림자는 공존합니다.


현실에서는 이변도 존재했습니다. 영원한 '2인자'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넘어 선겁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 역을 맡던 머레이 에이브러햄 배우는 모차르트 역을 맡던 톰 헐스를 제치고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작가가 궁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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