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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Dec 21. 2022

[감상문] 승자의 저주, 장자의 저주

진성준을 위한 진혼곡


자존심은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나 부리는 사치야.

- 재벌가 막내아들 中 -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습니다. 눈 떠보니 할아버지가 순양그룹 회장.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입니다. 전자부터 반도체까지 대한민국 경제 큰손이었고, 정치권도 쥐락펴락합니다. 대통령과 겸상하는 사이입니다. 대한민국은 성에도 안 차는 듯, 이제 전 세계를 호령하려 합니다. 그대로 있으면 복덩이가 넝쿨째 굴러오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혼외자 막내아들이 덜컥 나타납니다. 서울대 법대 수석 진도준. 냉철한 머리와 담대한 포부, 이성적인 행동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점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순양그룹 경영권 승계에 브레이크가 걸린 겁니다.


두터운 밥공기에 수저만 올리면 되는데, 첫째 아들 밥상머리로 고춧가루가 끼었습니다. 깜냥이 안 되는 걸까요 아니면, 무거운 중압감 때문일까요. 진성준의 행실이 잇따라 도마에 오릅니다. 동물의 왕 사자처럼 아무 여자들과 정분이 났고, 곳곳에 나무를 심고 다닙니다. 매일매일이 식목일(?)입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가사처럼 아내 가슴에 대못질도 서슴지 않습니다. 얇실한 성격은 또 어떻고요. 수저타령을 하며 순양그룹 직원들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윽박지르고, 권력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습니다. 끝까지 장자승계원칙만 고수합니다. 진성준은 왜 그럴까요. 첫째를 위한 변명, 장자를 위한 진혼곡입니다.   



■ 진성준과 진도준, 이맹희와 이건희의 평행이론


역사는 반복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삼성전자와 CJ그룹은 대규모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첫째 아들 이맹희 씨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삼성 주식과 배당금을 돌려받기 위해 법원 문을 두드린 겁니다. 삼성생명 주식 824만 주와 배당금이 목적이었는데, 지금 돈으로 수조 원에 달합니다. 물론 이건희 회장은 한 푼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하며 이맹희 씨는 감히 내 눈도 쳐다보지 못했다고 쏘아붙였습니다.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아버지 눈 밖에 난 이맹희 씨는 삼성일가에서 기수열외됐습니다. 삼성가의 양녕대군이었습니다.


낭떠러지 끝은 죽음보다 더합니다. 삼성가에서 내쫓긴 이맹희 씨의 이야기입니다. 조용히 숨어 지내려 했지만,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는 이야기부터 성도착증이 걸렸다는 말까지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같은 고향출신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역모를 꿈꾸고 있다는 누명도 썼고 한때는 정신병원에 감금될 위기도 있었습니다. 무리에서 쫓겨난 사자는 더 이상 밀림의 왕이 아닙니다. 하이에나들의 표적이 됩니다. 할퀴고 뜯기고, 벼랑 끝으로 떠밀립니다. 때문에 자존심을 부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사지로 몰아야 합니다.  



■ 승자의 저주...'인지 부조화'로 자기 무덤 판다


장자계승원칙은 한낱 허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도 사실 장자의 나라가 아닙니다.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대왕부터 장자계승을 뒤집은 세조, 방계출신으로 임금에 오른 선조만 봐도 그렇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자녀들끼리 평등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집에서 혼인 생활을 하는 '남귀여가혼'도 있었고, 제사도 남자와 여자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며 사그라드는 양반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예법이 강화됩니다. '장자계승 원칙'이죠. 승자의 저주와 장자의 저주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첫째 아들이 다른 자녀들보다 모든 분야에서도 으뜸이 돼야 하는 착각. 인지부조화입니다. 믿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이 불편하면, 사람들은 불일치를 없애려고 하는 겁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도 그렇습니다. 첫째 진성준 보다 뛰어난 막내아들 진도준이 나타났을 때, 장자는 인지부조화를 느낍니다. 진성준은 순양그룹 회사 정보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고, 불법적인 부동산 투기도 거침없었습니다. 진도준과 DMC 사업권 경합을 벌이다 패배하면서, 결국 물류창고로 쫓겨납니다. 애초부터 진성준이 첫째 아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무리수와 자충수는 없었을 겁니다.    



권력은 측근이 원수고,
재벌은 형제가 원수다.




<재벌집 막내아들 감상문>


1. 승자의 저주, 장자의 저주

- 진성준을 위한 진혼곡


2. 전태일은 죽었다

- 망국적 도덕적해이 시대


3.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초밥알 취재하고 등산복 광고 없애고


4. 3당 합당과 스타벅스, 서태지

- 시대교체. 세대교체. 문화교체


번외) '형제의 난' 해결사, 킹메이커

- 49대 51, 판도를 뒤집는 판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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