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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Feb 19. 2023

[감상문] 이 시대 우리 아버지들을 위하여

다시 쓰는 '2022년 노벨문학상' 독후감


그의 자부심은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 '남자의 자리' 내용 中 -



얼굴살은 움푹 파여있었고, 콧날은 우뚝 솟아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퀴퀴한 취두부 냄새가 집안 구석구석을 뒤덮는다. 코를 찌르는 체취지만 작가는 아랑곳하지 않은 듯 한 곳만 응시하고 있다. 남자의 자리. 한평생을 살다 간 어느 남자의 마지막이었다. 방 한구석을 차지한 '남자의 자리'는 누추했고, 흐물흐물 파란색 양복에 감싸인 형상은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었다. 잎이 없이 자라온 앙상한 '나목'이었다. 곳곳에는 검버섯들이 자리 잡은 나목. 어느덧 나이를 먹어 세포들이 죽으면 검은 점으로 몰리는 피부병으로 뒤덮여 있었다. 온몸을 수놓은 버섯꽃을 지켜보면서 작가는 주마등처럼 기억들이 스친다.


말쑥하게 차려입기를 좋아한 노동자이자 사랑하는 아내와 왈츠를 추는 자상한 남편, 종종 맞춤법을 틀렸던 아버지의 모습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열등감을 인식하되 최대한 숨기면서 말했다. 한 지붕에는 두 가족이 살고 있었다. 시대와 세대를 구분 짓는 선이자, 빈부격차와 문화격차로 점철된 벽. 남자는 지식과 단정한 품행이 훌륭한 내면의 표지라 여겼다. 공부는 좋은 환경을 얻고 노동자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 감내하는 고통이라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작가가 학교 선생님으로 둥지를 틀고, 엘리트 신랑을 데려왔을 때 누구보다 반겨주셨다. 아버지의 대리만족이었다.



■ 전쟁과 산업화 그리고 브루디외의 '문화자본'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 폐허에는 먹고사는 또 다른 삶의 흉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끝나자 산업화 바람이 불어닥친 Y시. 가정을 책임지는 아버지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소년들과 열세 살 된 아이들을 채용하는 끈 제조공장에 들어가며, 청결한 노동조건이라고 안심할 뿐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가정으로 지키는 방파제로 살았던 아버지. 그 과정에 자신은 없었다. 전쟁과 산업화라는 쓰나미 속에서 끊임없이 '남자의 자리'는 바뀌지만, 정작 남자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층민 노동자의 삶을 전전한다.


아버지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 '문화자본'이다. 남자는 구운 소시지 하나와 새우 봉지 하나에 허기진 배를 달래고, 루아즈 담배를 피우며 인스턴트 건식 수프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작가는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가 마주한 '문화의 벽'. 프랑스 평론가 부르디외가 강조했듯 문화는 계층과 직위 그리고 사람을 구별 짓는다. 어쩌면 서로에게 할 말이 남아있지 않아서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한 가정을 조명하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 모든 가정을 조망한다. 하드보일드처럼 담담하게 전쟁과 산업화, 빈부격차와 문화자본 이야기를 담았다.



■ 죽도록 넘고 싶었던, 넘어야 했던 '남자의 문턱'


남자의 자리는 곧 '남자의 문턱'이었다. 그토록 넘어야 했던 남자의 자리. 죽도록 넘고 싶었지만, 넘을 수 없는 자리이기도 했다. 노동자를 넘어 부르주아로, 문맹인을 넘어 지식인으로 가는 언덕에 남자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자리를 지켰다. 작가는 앙상한 나목이 있던 남자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덤덤하게 글을 이어간다. 남자의 자부심은 당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죽기 전에 말하고 싶었지만 작가가 끝내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문턱을 넘은 작가는 반대편에 있는 앙상한 나목을 따듯하게 안아주며 마침내 벽을 허문다.


피와 땀으로 이룩한 산업화 세대. 아버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됐다. 팍팍한 현실에 피할 수 없는 전쟁과 산업화,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은 우리 아버지들. 삶이 먼저 문학은 그다음이라는 작가의 시선처럼, 작가는 이 시대 아버지들에 대한 그림을 남겼다. 아버지에, 아버지에 의한, 아버지를 위한 초상화. "교양 있는 부르주아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중간에 두고 가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일을 마쳤다"라 작가는 초상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문학은 우리 삶을 구원할 수 없다'는 김훈 작가가 생각나는 작품, 이 시대 우리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남자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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