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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Aug 07. 2023

이런저런 마음.


지난봄 하프를 준비하면서는 그래도 주 3회 10킬로 정도씩은 꾸준히 달렸다. 대회 당일에도 10킬로까지는 몸이 가뿐해서, 이제 내 몸이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했구나 싶었다. 이제는 10킬로쯤은 매일도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 뒤로 생각이 나는 때마다 달리기도 하고, 수영도 했는데, 요즘은 10킬로는커녕 채 5킬로를 달리는 것도 버겁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땀이 얼마나 많이 나고 쉽게 지쳐버리는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킬로가 거뜬하게 생각되었는데 왜 지금은 5킬로를 달리는 것도 어려울까. 심지어 오랫동안 쉰 것도 아닌데. 그것이 마음가짐 때문인가 아니면 목표의식이나 동기의 문제인가 싶어 다시 10월의 하프 대회를 등록했다. 등록한지도 한참 되었는데 여전히 5킬로도 달리기 힘든 것을 보니 단순한 마음가짐이나 동기의 문제만은 아닌듯싶다. 


한동안은 달라진 나 자신에 실망했다. 낮아진 기록과 체력을 마주하는 것이 영 어려웠다. 개운하게 땀을 흘리고 나서도 이전보다 한참 거리가 짧아진 것에 실망했다. 괴로움과 저항의 시간을 보냈다. 얼마간은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는 내가 몇 번 노력해도 이 정도 날씨에 10킬로 뛰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현실적으로 목표를 낮춰 운동을 하고 있다. 늘 성장하는 나의 기록을 마주하면 좋겠지만 꼭 그럴 수만은 없다고 인정하기로 했다. 


요즘은 5킬로 달리는 것도 마음의 큰 준비를 하고 달린다. 괜히 식사량도 많으면 속이 더부룩하지 싶어 조절하고, 물도 많이 마시고 화장실도 꼭 들리고, 달리기 2시간 전부터 오늘 잘 달릴 수 있을까 마음 졸인다.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이고 결연한 마음으로 나가 삼십분을 달리고 온다. 그래도 실망하고 아예 달리지 않는 것보다는 삼십분씩이라도 달리는 것이 그래도 낫지 않나. 어떤 때엔 마음도 꼭 무균실처럼 스트레스가 없는 어떤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상상하게 되는 것 같은데, 때로는 그런 마음이 현실을 더 버겁게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인생은 번뇌의 연속이라고 거창하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어느 정도 인생엔 불안, 우울, 고난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거의 점심까지 늦잠을 잔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나오게 되었다. 나의 요즘의 일상은 대부분 사람들이나 가족과 함께이고 그래서 정신이 없다. 혼자 차분히 생각할 마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만에 갖게 된 혼자 있는 시간이 낯설기도 하지만, 꼭 오래된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는 시간은 대부분 혼자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에 내게 주어진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또 많은 시간을 나 자신과 내 주변에 대해 생각하고 적기도 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때에 그것을 적지 않으면 날아가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이 되어 강박적으로 펜과 노트를 챙겨 다니곤 했다. 그때엔 필기구에 애착이 있어 사뭇 진지한 태도로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이 만년필에 잉크를 충전해두기도 했다. 


인턴 시절, 나의 숙소는 8인 1실이었다. 큰 방에 네 개의 이층 침대가 있었다. 오프가 많지 않았으니 보통 6-8명이 함께 한방에서 잠을 잤다. 물리적으로 몸이 고단하기도 했지만, 혼자 생각하거나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독립적인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꽤나 힘들기도 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내 마음은 꽤나 양가적이기도 하다. 어떤 때엔 그것이 내 정체성이겠거니 하는 마음이 든다. 그 시간이 없으면 내가 옅어지거나 사라질 것처럼 두렵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은 대체로 외롭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니 지긋지긋하기도 하다. 과거에 열렬히 좋아하고, 필요로 했던 시간들이 요즘은 그만큼 당기지 않는다. 만년필은 말라붙은지 오래되었고 일기장도 어디 두었는지 잘 모르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결핍되었던 어떤 것이 시간이 지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함께 생활하면서 어느 정도 채워졌나 보다 하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얼마 전 예비군 동원 훈련을 2박 3일간 다녀왔다. 생활관에서의 시간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어떤 책을 가져갈까 고민하다 하루키의 1q84를 가져가 얼마쯤 읽고 왔다. 나는 어려서 하루키를 꼭 목마른 사람처럼 읽었다.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다시 읽어서는 그 포인트를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가 꼭 어린 시절의 일기를 다시 읽는 것처럼, 하루키 소설을 읽는다는 것, 과거에 열렬히 좋아했다는 것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고 왜 그 소설을 좋아했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계속 이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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