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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n 08. 2024

신포도 카메라


 창문을 열고 듣고 싶은 음악 실컷 들으면서 운전을 하는 길.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듣는 것도 소매가 젖는 것도, 우산을 쓰는 것도 좋다. 습도 높은 날 숨을 쉬고 있으면  공기가 밀도가 높은 젤리처럼 느껴진다. 젤리가 날 둘러싸고 있는 기분. 이상하게도 숨이 막힐 것 같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불처럼 포근하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창문을 여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습한 공기를 조금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카메라 구입은 실패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몰린 것인지. 몇 번 오류메시지가 뜨더니 그 짧은 판매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허탈해하고 있었는데 마침 석형이 그 카메라를 갖고 있다고 해서 빌려서 좀 사용해 보기로 했다. 카메라를 살지 말지 고민하면서, 몇 번 유튜브로 검색했더니 유튜브에 온통 카메라로 도배되어 있다. 한동안, 나는 왜 카메라를 사고 싶은 것일까, 사진을 찍고 싶은 걸까, 카메라가 사고 싶은 걸까 고민하면서 사진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콘탁스의 수동 카메라로  학생 때 구입해서 10년가량 사용하고 있다. 한 카메라를 단렌즈로 오래 사용하다 보니 사진을 찍는 과정이 내게는 익숙하다. 사진을 찍는데 3초에서 길면 10초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아이가 어리니 빠르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는데 벌써 아이들이 커서 그 자리에서 아빠를 위해 5초 정도 기다려줄 수 있다. 아마 새로운 카메라의 어떤 기능이 필요하다기보다, 새로운 예쁜 기계에 흥미라도 생겨서 적당히 사진을 다시 찍고 싶다는 기대가 있던 것 같다.  이번에 카메라 구입이 실패했지만, 덕분에 원래 갖고 있던 카메라로 더 사진을 많이 찍게 되기도 했다. 


 요즘 주로 사진을 찍는 대상은 집이라든지, 아이들이라든지, 출근길의 아파트 화단이다. 아파트 화단이 요즘에는 사진을 찍기 적당한 풍경처럼 생각되는데, 이미 해가 높게 떠있어도 나무 그늘 사이로 걸러진 빛이 내려오고 그 빛을 받은 풀들을 찍는 것이 꽤 괜찮다.  과거엔 어떤 멋진 낯선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평소와는 다른 풍경, 낯설다는 데서 오는 매력이 컸다. 요즘은 그것보다는 좋은 빛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물론 더 멋진 풍경이라면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늘 보던 풍경이라도 어떤 빛을 받는지에 따라 다른 사진이 되는 것 같다. 사진을 열심히 찍으려고 하는 시기는 대체로 마음이 만족스러운데, 어떤 대단한 무엇이 있다기보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아름다운 순간을 담을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요즘은 분석가 과정 면접을 보고 있다. 왜 나는 분석가가 되고 싶은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막막하고, 그래서 모호한 대답을 늘어놓게 된다.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것이 꼭 더 좋은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없기도, 두렵기도 하다. 분석가 선생님은 내가 요즘 달라지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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