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주말에 승하와 영화관에서 사랑의 하츄핑을 보러 다녀왔다. 7살 주호는 요즘 포켓몬만 좋아하느라 하츄핑 관심 없다고 했다. 44개월 승하는 아직 하츄핑을 좋아하는 나이는 아니다. 유튜브를 보더라도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슬라임 영상 같은 걸 보는 편인데, 예고편을 보고 괜찮겠다 싶었는지 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나더러, 그래도 딸이 아빠랑 좋은 추억 만드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해서 승하랑 둘이 다녀왔다.
승하가 영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 이 나이에 한 시간 반가량 한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조마조마했다. 승하에겐 사랑의 하츄핑이 너무 슬펐던 모양이다. 로미가 하츄핑에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여러 번 찾아가는데, 하츄핑이 밝힐 수 없는 이유로 로미를 몇 차례 반복적으로 냉정하게 거절한다. 나는 당연히 로미와 하츄핑이 파트너가 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삼고초려 같은 건가, 하고 보는데 승하는 그게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 결국 한 시간쯤 보다가 도중에 나오게 되었다. 나오면서 이게 그렇게 슬픈 일인가 잠시 고민했는데, 로미 마음도 몰라주고 자꾸만 거절하는 하츄핑이 너무하다 싶기도 했다. 이제는 마음이 밋밋해진 어른과 친구를 포함한 모든 관계 하나하나가 소중한 44개월 아이 마음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려서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엄마는 부엌에서 밥을 하고 계셨는지. 난 모든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파워레인저를 거실에서 열심히 보고 있었다. 아. 가족과 함께 어디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는지, 빨리 나가야 하는데 내가 중요한 장면이라 안된다고 하니 무심하게 엄마가 그거 어차피 파워레인저가 이길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난 굉장히 몰입해서 마음 졸이면서 보고 있었는데 어차피 파워레인저가 이길 것이라니. 생각해 보니 늘 파워레인저를 오래 봐왔지만 한 번도 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새로워진 악당에 고전하는 듯 보이지만 언젠가는 지구를 지켜냈다. 뭔가 나는 이 뻔하게 결말이 정해진 것을 왜 그렇게 열렬히 좋아했을까. 그 뒤로 괜히 파워레인저에 몰입이 잘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 마음만 졸여놓고 이길 것을 봐서 뭐하나 싶었다.
날이 식고 있다. 더위가 오래되자 꼭 이 더위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제저녁은 웬일로 비교적 시원한 바람이 불었는데, 그게 꼭 어디 여행에 다녀온 것보다 더 여행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신분석가 과정에 합격했다. 분석가 과정에 들어오기 전에 읽기 좋은 책이 있다고 해서 읽어보고 있다. 차를 운전하면서는 머티리얼을 읽기가 쉽지가 않아서 날도 선선해지니 지하철에서 책 읽는 시간을 늘려보고 있다. 다음 달부터 정신분석을 받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오랜 주 2회 정신 치료를 주 4회의 정신분석으로 바꾸는 일인데 과연 어떨지. 기대 40, 걱정 60 정도의 마음이다. 나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정리하는데 20대와 30대의 많은 시간을 보내온 것 같다. 꼭 서랍에 잘 정리해 둔 것 같은데 그것을 다시 꺼낸다는 것에 대해 걱정되는 마음이 상당히 있기도 하다.
요즘은 어려서의 일들이 종종 떠오른다. 한동안 떠오르지 않던 중학생, 혹은 대학생 시기의 기억들. 예전에 중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 입장에선, 놀러 왔을 때 과일 깎아주고 맛있는 거 해주는 친구 엄마보다, 알아서 너네끼리 라면 끓여먹으라고 하는 친구 엄마가 더 좋다고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선생님의 교과 과목은 사회였는데, 사회 수업에 대한 내용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고 이상하게 이런 부분들만 기억이 난다.
문득 이 말이 떠오른 이유는, 종종 친구들끼리 저녁 약속을 잡을 때 근사한 곳에 가는 것보다는 삼겹살이나 치킨이 좋길래. 난 왜 근사한 곳에 가는 것이 마음이 불편할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사회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 나는 당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친구들이 오면 내버려 두기보단,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을 챙겨주려고 하는 편이라서, 나는 그럴 때 종종 나도 이제 중학생이니 독립적으로 친구와 관계를 맺고 싶은데 친구를 집에 데려오면 그게 안되는구나. 라면 끓여서 먹도록 내버려두면 좋을 텐데 해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기억이 요즘의 친구들과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가는 것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